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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원작 다 잡으려다 다 놓친 ‘연출력’

등록 2015-01-12 19:12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한 장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한 장면.
[리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캐릭터 이해 안되고 명대사 힘잃어
어설픈 안무·녹음 반주도 아쉬워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 모두 다 놓친 작품.’

지난 9일 개막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마거릿 미첼의 동명 소설(1936)과 미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비비언 리·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대작 영화(1939)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에 팬들의 기대가 컸지만, 막상 무대에 오른 결과물은 아쉽기만 하다. 1000 쪽 분량의 소설, 4시간짜리 영화를 한정된 공간인 무대에서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바람과…>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성장담을 그려내며 그 안에서 네 남녀의 사랑, 노예제를 둘러싼 역사적 갈등과 전후 국가 재건이라는 시대상을 장대하게 풀어낸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뮤지컬 역시 이런 원작의 플롯을 그대로 따른다. 하지만 2시간20분이라는 공연시간에 이 모든 것을 담아내려다 보니 그저 영화의 주요 장면을 조각조각 이어붙였다는 느낌을 준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타라를 살리기 위한 스칼렛의 집착도, 스칼렛에 대한 레트 버틀러의 끈질긴 사랑도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다. “난 결코 지지 않아. 거짓말, 도둑질, 사기, 살인을 해서라도 다시는 굶주리지 않을 거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테니까!” 등 원작에서 큰 감동을 줬던 클라이맥스의 명대사도 힘이 떨어진다. 차라리 철부지 스칼렛이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성장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덜어내던가 아니면 스칼렛·레트·애슐리·멜라니의 사랑에만 집중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원작 소설과 영화가 미국 작품인 데 반해 뮤지컬 <바람과…>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노트르담 드 파리> 등에서 보듯 프랑스 뮤지컬은 배우와 댄서의 역할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안무’에 방점을 찍는다. 이 작품 역시 발레, 아크로배틱, 비보잉, 현대무용까지 끌어왔다.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을 몸짓으로 전달해야 할 댄서들의 움직임은 어설픈데다 되레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특히 여러차례 등장하는 어린 하녀 프리시의 독무는 과도하게 느껴진다.

음악과 무대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 원작에서는 존재조차 미미한 벨 와틀링의 술집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아무리 화려한 볼거리 제공 차원이라고는 하나 방대한 이야기를 제쳐두고 굳이 이 부분을 넣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흑인 노예들의 군무·합창 장면 역시 1막에서는 임팩트가 크지만, 2막에 다시 등장한 것은 이야기의 맥을 끊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아닌 엠아르(녹음반주)를 사용한 것도 거슬린다. 원음의 강렬하고 풍부한 질을 살리려는 의도라고는 하나 가뜩이나 발음이 좋지 않은 주진모(레트 버틀러 역)의 경우, 음악에 묻혀 가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라이브로 듣는 즐거움마저 포기해야 하는 관객 입장에선 표 값 14만원(아르석 기준)이 과하다고 느껴질 듯하다. 그나마 비중은 작지만 김보경(멜라니 역)과 정상윤(애슐리 역)이 보여주는 안정적인 노래와 연기가 작은 위안거리다.

원작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맞는 연출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 모든 것에 욕심을 부리면 어느샌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쇼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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