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고 있는 <원스> 여주인공 ‘걸’ 역의 전미도 씨.
피아노 못치는데 원스 ‘걸’ 맡아
6개월 연습…관객들 “연주 참 좋아”
어눌한 말투 위한 발음법칙 만들기도
6개월 연습…관객들 “연주 참 좋아”
어눌한 말투 위한 발음법칙 만들기도
“사실 전 피아노 악보도 읽을 줄 몰라요. 이 역할이 너무 하고 싶어 피아노 선생님 도움으로 건반 치는 순서를 그냥 통째로 외웠어요. 공연 보신 분들이 ‘피아노 못치는 줄 몰랐다’고 할 때, 연기 잘하다는 말보다 더 듣기 좋더라고요.”
지난달 3일 개막한 뮤지컬 <원스>에서 여주인공 ‘걸’역할을 맡은 전미도(33)는 ‘피아노 연주가 참 좋았다’는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고백’했다. 화려한 무대와 세트 등 겉치장을 걷어낸 대신 배우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오직 ‘음악’만으로 승부하는 공연인데, 너무 ‘간 큰 도전’은 아니었을까? “오디션 때도 지정곡 두 곡만 독하게 연습해 갔어요.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을 하면서 <베르테르>를 연습 중이었지만, 배역이 너무 탐나 욕심을 부린거죠.”
6개월 넘게 피나는 연습을 했지만, 크고 작은 실수는 어쩔 수 없다. 오프닝 공연에선 연주 도중 박자를 놓쳐 멈칫거리기도 하고, 어떤 날엔 한 마디를 건너뛰고 연주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도, 밴드도 없으니 틀려도 숨을 곳이 없어요. 이젠 스스로 위로하죠. ‘조금 틀리는 것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지 않나’. 하하하. 틀려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기술도 좀 배웠고요.”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넘어야 할 벽은 바로 ‘요상한 말투 연기’였다. 영화 <원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뮤지컬 <원스>의 여주인공 ‘걸’은 체코이민자로, 다소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는 걸로 설정했다. 한국어 공연에서 이런 ‘재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번지…> 할 때 작곡가가 외국인이었는데, 한국말을 무척 열심히 연습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걸 바탕으로 남편을 상대로 연습하며 발음 법칙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죠. 제가 부산 출신이라 사투리 교정을 했었는데, 그 경험을 역이용하니 좀 수월해지더라고요.”
존 카니 감독의 원작 영화가 마니아층을 형성한데다, 후속작인 <비긴 어게인>이 더 큰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관심이 집중돼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다.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영화 <원스>를 다시 보지 않았어요. 무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걸’의 매력을 찾는 것이 숙제였으니까요. 원작과 캐릭터가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뮤지컬에서는 ‘걸’이 훨씬 더 적극적이에요.”
전미도는 여배우 중에는 드물게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연기한다. 지난 2008년 <신의 아그네스>로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연극으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연극 <메피스토>로 호평받았다. “연극은 기본으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줘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제가 부족하다는 걸 깨닫죠. 일단 텍스트가 깊고 어려우니까요. 한 가지만 하면 갈증이 풀리지 않더라고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 성극을 보고 처음으로 ‘배우’의 꿈을 꾸었다는 전미도. “예쁘지 않은 외모 탓”에 학창시절부터 아줌마·할머니·동네친구 등 주인공이 아닌, 다양한 역할로 경험을 쌓은 것이 큰 자산이 됐단다. “그 땐 ‘난 왜 주인공 안 시켜줘. 예쁜 외모만 찾는 빌어먹을 세상’ 막 이랬는데…. 그게 제 연기의 폭을 넓혀준 계기가 됐네요.”
그는 도전을 즐긴다. 지난해엔 오페라 <리타>의 드라마트루기(공연 전반에 걸쳐 연출가의 의도와 작품 해석을 전달하는 역할)를 맡아 새 영역으로 한 발짝 나섰다. 올해엔 어떤 도전을 꿈꾸고 있을까. “지금까지와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배역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늘 <맨 오브 라만차>에 나오는 매춘부 ‘알돈자’역을 하고 싶었는데, 올해엔 욕심 좀 내봐도 될까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배우 전미도 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