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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복고풍 매혹된 건 ‘절친’ 할아버지 덕분이죠

등록 2015-01-22 01:25수정 2015-01-22 08:34

‘새달 첫 내한공연’ 마이클 부블레 이메일 인터뷰
낮에는 배 타고 고기를 잡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하며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내던 마이클 부블레. 우연한 기회로 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 전 총리의 딸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게 된 그는 그 자리에서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옹 등을 키워낸 유명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의 눈에 띄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23살에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했을 땐 정말 힘든 시기였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쇼핑몰에서 노래하는 건 일상이었고, 생일 파티 축하 공연에, 크리스마스 땐 캐럴을 부르러 다니는 등 노래에 관한 일이라면 다 했어요. 개인적으로 웨딩싱어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갔던 웨딩싱어 무대에서 데이비드 포스터를 만났고, 그의 추천으로 미국의 큰 음반사와 계약하게 됐어요. 그날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날이 됐고, 데이비드 포스터는 그날을 만들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캐나다 출신 팝재즈 보컬리스트 마이클 부블레가 오는 2월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공연을 앞둔 그와 최근 전자우편으로 인터뷰를 했다. 한편의 드라마처럼 무명의 늪에서 인기 스타로 떠오른 그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강조했다.

‘오~선샤인 이 노랠 불러다오’
할아버지 신청곡 부르며 자라
스윙·비지스 등 복고팝으로 스타덤
“가족 그리는 ‘홈’ 큰 사랑 기뻐”

“수십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까지 불려온 노래들에는 분명 그 노래가 가진 힘이 있어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노래가 주는 감동에 빠져들 겁니다. 저도 토니 베넷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마이클 부블레’의 목소리를 새기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음악을 통해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스윙 재즈, 스탠더드 팝, 캐럴 같은 복고적인 노래로 인기를 얻고 있는 그에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음악이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그는 2003년 조지 마이클의 ‘키싱 어 풀’ 등을 노래한 데뷔 앨범 <마이클 부블레>로 큰 사랑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가 됐다. 젊은 나이인데도 스윙 재즈나 비지스 같은 복고 팝을 노래한 그에게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가 오래된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된 데는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스윙과 같은 고전에 대한 열정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할아버지는 언제나 제게 ‘오~ 선샤인, 내가 좋아하는 이 노래들을 불러줄 수 있겠니’ 하고 부탁했고, 그러면 저는 그 곡들을 외워서 불러드리곤 했죠. 할아버지는 지금도 저를 ‘선샤인’이라고 부르세요. 할아버지는 가장 큰 후원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중후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복고적인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를 잇는 보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과찬입니다. 제 이름과 프랭크 시나트라를 함께 떠올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값진 칭찬이에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이런 수식어 안에 갇히는 걸 끊임없이 경계해왔어요. 그 누구도 하나의 수식어 안에 갇히는 걸 원하지 않을 테죠. 바라건대, 훗날 제 다음 세대에 또 다른 젊은 음악인이 나타나 ‘이 시대의 새로운 마이클 부블레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의 대답도 지금 내가 한 것과 같기를 바래요.”

부블레는 기존 노래 리메이크를 많이 했지만 ‘홈’, ‘에브리싱’ 같은 자작곡도 크게 히트시켰다. ‘홈’은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3> 참가자 버나드 박이 불러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돼서 기쁘다고 했다.

“어릴 때 처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있게 됐어요. 그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담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그게 ‘홈’이에요. 이 곡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랐고, 결국 그 꿈이 이뤄졌어요. 전세계 군부대에서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많은 분들이 이 노래를 사랑해주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부모의 이혼을 겪는 등 힘든 순간을 맞은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었다고 해요. 제 감정을 담아 만든 노래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를 들으면, 가슴 벅찬 감동을 받고 뭔가를 이뤘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씨제이이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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