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란 슬픔, 발라드 가수에겐 ‘축복’ 휘성
지독한 가난·쓰라린 실패로 견뎌냈던 슬픔의 결과물
‘러브…러브…? 러브…!’
불안과 결핍은 힘이 세다. 벼랑 끝에 선 듯 느끼면 온 에너지를 짜내게 된다. 그 힘에 밀려 어떤 사람들은 쉼 없이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 추동력은 그들에게 내린 고통이며 동시에 축복이다. 휘성(23)은 슬픈 축복을 받은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네번째 앨범 <러브…러브…? 러브…!>는 그 결과물이고, 사랑에 대한 가슴 뻐근한 발라드다. “항상 초조해요. 한번 삐끗하면 대중은 ‘쟤도 다 됐네.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고 할 거예요. 결국 아무도 제 노래를 들으려하지 않으면 저는 가수로서 죽음을 맞겠죠.” 그래서 성대결절과 비염에 시달려도 “노래에 목소리가 착 달라붙고 ‘됐다’ 싶을 때 거기서 한번 더 뽑아내도록” 녹음했다. “어려운 음악하면 뭘 해요.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대중과 같이 호흡해야죠. 그러려면 가수는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해요. 저는 감정 표현에 자신 있어요. 특히 슬픈 거요. 가장 많이 느껴본 감정이니까요.” 대중의 취향과 자신의 강점 사이 교집합이 이번 앨범이다. 그는 절박하다. 3집까지 내리 인기곡을 쏟아내고 이번 앨범도 나오자마자 교보문고 핫트랙 가요앨범 주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도 여전하다. “잘 사는 사람들은 계속 잘 살아요. 못 살던 사람들은 어쩌다 잘 살죠. 어려운 시절이 다시 올지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어요. 덕분에 잘 되도 잘난 척하지 않아요.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죠. 다만 너무 어렵게만 본다는 게 문제에요.” 아버지는 택시 운전기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집에는 종이 봉투, 인형 눈 등 어머니의 부업 거리가 쌓여있었다. 머리 굵어지며 가난이 뭔지 알았고 그만큼 분노도 자랐다. “예를 들자면, 부자 친구들이 생일 잔치할 때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빼는 거. 그걸 좋다고 쫓아가는 거….” 절실하기에 그는 자신을 독하게 몰아붙일 수밖에 없다. 감정을 풍부하게 증폭시킬 수 있도록 원래 미성이었던 목소리에 거친 질감을 보탰다. “‘이 노래 좋은데 내 목소리랑 안 맞아’ 이렇게는 절대로 안 놓쳐요. 곡에 들러붙을 때까지 목소리를 맞춰요.” 고3 때 댄스그룹 ‘에이포’로 실패는 이미 맛 봤고 충분히 쓰라렸다. 목소리의 여러 결은 이번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울보’처럼 질펀한 발라드부터 ‘투 핫’ 같이 아르앤비 감수성을 버무린 것들을 거쳐, ‘모닝’에서 섬세한 미성까지. 작사·작곡한 ‘러브 샤인’에는 다시 만나 기쁘고, 걱정스럽고, 침묵하고, 환호하는 겹겹의 느낌을 멜로디 구비구비에 실었다. 보너스트랙 빼고 16곡은 모두 그의 바스러질 듯한 부대낌으로 각각의 색깔을 얻었다. 수공예품처럼 섬세하게 빚어내는 데는 그의 감성이 한몫했다. “우울했다가 즐거웠다가 오락가락 롤러코스터를 타요.” 무턱대고 낙관적이 될 만큼 무던하지 못한 그는 “자라면서 사랑을 많이 못 받아 그런지 사람들을 보면 ‘곧 그들도 떠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에 금을 낸 게 그의 첫 콘서트였다. “자리를 꽉 매운 관객들을 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그날 정말 많이 울었어요.” 마지막곡 ‘커다란 너무 커다란’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믿음이란 흔한 감정을 모르고 자라온 날이 많아 …모자란 너무 모자란 내겐 어색한 내 노랫소리가 많은 사람들을 모아 나를 세우던 날 커다란 너무 커다란 기쁨에 내 모든 게 변해버렸죠.” 쉽지 않지만 붙잡지 않을 수 없는 게 사람이고 사랑인 걸 그는 안다. 그래서 이번 앨범 제목에 ‘사랑’을 세 번씩이나 붙였다. “오롯이 지키고 싶은 게 사랑인 것 같아요.”
노래에 목멘 그는 “노래를 즐겨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음악 듣는 것도 피곤할 때가 있어요. 듣다보면 연구하게 되고 일이 돼요.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걸 원하잖아요. 언젠가 정말 편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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