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호랑이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타이거>를 만든 김향란(왼쪽), 론 브랜튼 부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브랜튼은 비무장지대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믿는 학자에 관한 기사를 읽고 영감을 얻어, 아내 김씨와 함께 뮤지컬을 제작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
뮤지컬 ‘타이거’ 만든 론 브랜튼·김향란 부부
기사속 ‘호랑이 추적’한 학자 모티브
인간의 탐욕·자연의 중요성 그려
98년 결혼 ‘인터넷 국제커플 1호’
각본 쓴 김씨 “신나게 싸우며 작업”
기사속 ‘호랑이 추적’한 학자 모티브
인간의 탐욕·자연의 중요성 그려
98년 결혼 ‘인터넷 국제커플 1호’
각본 쓴 김씨 “신나게 싸우며 작업”
‘아직 한반도에 백두산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가끔 지구상에 500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는 멸종위기종 백두산 호랑이가 우리 땅 어딘가 살아있을 거란 희망 섞인 상상을 한다. 백두산 호랑이는 맹수가 아닌, 한반도의 수호신이자 상징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백두산 호랑이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한 편이 무대에 오른다. 다음달 5~8일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에서 공연하는 <타이거>다. 소재만큼이나 이 뮤지컬이 독특한 이유는 또 있다. 미국 출신 작곡가 겸 재즈 피아니스트인 론 브랜튼과 그의 아내인 공연기획사 대표 김향란씨가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론 브랜튼은 김 대표와 결혼해 1998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체 이 부부는 어떤 이유로 호랑이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지난 16일 론 브랜튼 부부를 만났다.
“한국 절에 가면 늘 산신 옆에 호랑이가 따라다니는 그림이 있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알고 보니 호랑이는 한국의 혼을 대변한다고 하더라고요. 한반도가 호랑이 모양으로 생겼다고 설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죠?”(브랜튼) 한국 호랑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론은 어느 날 ‘운명 같은’ 기사를 읽었다. 비무장지대(DMZ)에 아직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하며, 추적하는 한 학자에 대한 얘기였다. “론이 그 기사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기사 속 학자가 호랑이에 매달려야 할 운명이라면, 나는 그걸 작품으로 만들어야 할 운명’이라고 하니, 말릴 수가 없더라고요.”(김)
뮤지컬 <김종욱 찾기> 등에서 이미 작·편곡을 담당한 적이 있는 브랜튼은 즉석에서 대강의 콘셉트와 스토리 라인을 짰다. 휴전선 비무장지대 일대에 백두산 호랑이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10년을 추척한 동물학자 홍승혁을 중심으로, 그가 야생 호랑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탐욕과 배신, 그리고 자연 보존의 중요성을 그려낸다.
시놉시스는 하루 만에 완성됐지만, 그걸 쓰기까지 호랑이에 관한 각종 문헌을 찾고 공부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삼국유사> <사기> 등 역사서는 물론, 옛날 민담·설화·전설, 신문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러다 일제 때 호랑이 사냥으로 백두산 호랑이가 멸종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브랜튼) <타이거>의 주인공 홍승혁의 할아버지가 일제 때 마지막 호랑이를 잡은 사냥꾼으로 설정된 것도 꼼꼼한 공부 덕이다.
애초 김 대표는 브랜튼이 영어로 쓴 시놉시스를 한국말로 번역하는 역할만 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각본을 전부 썼다. “남편이 자신의 시놉시스와 넘버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저라고 하더라고요. 남편 덕에 강제로 작가 데뷔를 한 셈이죠.”(김)
부부끼리 작업을 하면 장단점이 뚜렷하지 않을까? “캐릭터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고, 수정도 쉬워요. 아내는 건축가처럼 완벽히 제 생각을 구현해줬어요.”(브랜튼) “좋은 말만 하네요? 신나게 싸우면서 작업했죠.”(김) 전화선을 이용한 피시(PC)통신이 대세이던 시절 ‘유니텔’로 만나 사랑을 키운 ‘인터넷 국제커플 1호’라는 둘은 여전한 애정을 과시했다.
브랜튼의 음악은 원래 재즈에 기반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다양한 스타일이 녹아 있다. 클래식 팝, 펑키, 이탈리안 아리아 느낌의 곡까지 등장한다. “자라면서 제가 접한 거의 모든 종류의 음악을 망라했다고 보면 돼요. 단, 재즈나 스윙은 단 한 곡도 없습니다. 하하하.”(브랜튼)
<타이거>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창작보다 투자자를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작곡가인 브랜튼이 외국인이라는 게 투자자를 찾는 데 걸림돌이 됐다. 결국 <타이거>는 온전히 부부의 사비로 제작됐다. “요즘은 서양 캐릭터로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 유행인 듯해요. 하지만 진짜 우리 것에는 관심이 적죠. 이 작품이 국내는 물론 해외를 누비는 것이 우리 부부의 최종 목표예요.”(김) 070-4272-9680.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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