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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한대수는 아직 여전히 목이 마르다

등록 2015-04-20 16:45수정 2015-04-20 16:56

“작곡가는 실험 계속 해야”…나이 거꾸로 먹어

음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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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실험을 계속해야 해”

최근 소셜펀딩을 통해 데뷔 40돌 기념음반 ‘리버스’를 세상에 내놓은 ‘한국 포크록의 전설’ 한대수는 대놓고 말했습니다. 전인권, 강산에, 윤도현, 이상은, 호란 등이 다시 부른 그의 노래들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리버스 Rebirth) 예술을 느끼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거침없이 음악실험을 외치는 그의 말 속에서 거꾸로(리버스 Reverse) 나이 먹는 젊은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리학자 한창석의 아들인 한대수, 그가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전위예술가 무세중을 만나 영향을 받고 만들었다는 4집 앨범 ‘기억상실’과 5집 앨범 ‘천사들의 담화’ 수록곡들을 듣다보면, 음악에서 실험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게 됩니다.

실험실에서 물질적 대상들에 대한 여러 가지 엄격한 통제를 통해 이뤄지는 자연과학 실험이나, 칼 마르크스에서 비롯된 공산주의처럼 사회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사회과학 실험과는 또다른 특성들이 음악 실험에는 존재합니다. 음악실험은 작곡가가 화성, 선율, 리듬 등의 음악 요소를 조합해보면서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몰입되어 평가를 내린다는 점에서, 실험 주체와 실험 대상이 엄격히 분리된 자연과학 실험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과학 실험에서 실험 주체인 연구자는 모르모트와 같은 실험 대상들과 엄격히 분리되어 객관적인 실험 데이터들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죠. 실험대상이 된 ‘실험군’ 모르모트들과 실험이 행해지지 않은 ‘대조군’ 모르모트들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데이터화 하기도 해야 하구요.

또 음악실험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실험이었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것과 같은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습니다. 칼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 내용의 완전성 여부를 떠나 ‘실험군’인 공산주의 국가들과 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대조군’인 자본주의 국가들이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서 ‘실험군’과 ‘대조군’의 데이터가 혼재되어 결국 과학적 가설을 넘어서는 엄격한 의미의 과학법칙을 도출하지 못하게 됐었죠. 이런 경우들을 따져볼 때,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처럼 엄격하게 통제되는 실험공간이 불가능하여 실험대상과 비실험대상들이 혼재하는 등 과학법칙을 도출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적 실험방법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을 가진 인간들의 사회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법칙을 도출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이죠.

반면 음악실험은 편곡자가 편곡 실험을 한 결과물인 원곡과 다른 장르의 음악 즉 ‘실험군’과 실험을 하기 전 작곡가가 준 원곡, 즉 ‘대조군’이 서로 영향을 끼치거나 혼재되어도 음악가가 자신만의 음악법칙을 만드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음악실험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물인 음악창작의 법칙 또한 엄격한 자연과학 사회과학 언어로는 전부 다 서술할 수 없는 개인의 정신 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꿈에서 들은 멜로디를 기억하여 ‘예스터데이’라는 희대의 명곡을 만든 것처럼, 많은 작곡가들이 “영감을 얻어야”, “필을 받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학 논리를 넘어선 음악창작의 법칙 때문인 것이죠.

“작곡은 모든 음악적 과정 중에서 가장 이해되어지지 않은 분야”라고 말한 영국의 인지심리학자 존 슬로보다의 말에서도 그러한 음악창작 법칙을 발견하는 일의 어려움을 쉽게 느낄수가 있습니다. 슬로보다는 작곡자의 창작곡 초고와 그에 대한 비망록 조사, 작곡자가 스스로 작곡과정에 대해 말한 내용 조사, 작곡자가 작곡할 때의 현장 관찰, 즉흥연주의 관찰 이 네 가지 방법을 통해 음악창작의 법칙을 밝혀내려고 했습니다. 위와 같은 네 가지 방법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례를 연구한 결과 슬로보다는 ‘음악적 마인드 : 음악 인지심리학’이라는 논문에서 음악적 아이디어와 주제가 떠오르는 영감(inspiration)의 단계, 음악적 아이디어가 좀 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과정들로 확장되고 변형되는 실행(execution)의 단계가 음악창작의 법칙으로 가는 길에 계단처럼 펼쳐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작곡 ‘실행’의 전 단계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의식의 과정을 도저히 설명해낼 수가 없었죠.

영국 음악학자 사이먼 에머슨 또한 ‘작곡 기법과 교육학 : 현대음악 리뷰’ 라는 논문에서 ‘소리의 창조적 배합, 소리가 잘 어울리는 지 검사, 그 소리의 배합들을 쓸지 말지 결정’이라는 3단계 작곡 모형을 제시하였지만, 음악창작 법칙의 본질적 내용과 그 법칙화 과정을 일부분 밖에 서술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음악학자 D. 풀머는 ‘작곡의 발생학적 과정‘이라는 논문에서 “작곡가들은 노래를 만들 때 계획된 형식보다는 비음악적 추상적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려 음악작품의 구조적 기초로 삼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또한 비음악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성되어 어떠한 방식으로 음악적 구조를 만들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주지 못했습니다.

에임즈와 도미노, 그리고 레이켄의 ‘인공지능을 이용한 작곡 연구’는 또다른 방향에서 음악창작의 법칙을 밝혀내려는 연구였습니다. 음악을 작곡하는 인공지능을 연구한다는 얘기는 곧 음악을 창작하는 인간의 뇌 활동과정을 추정하여 그것을 컴퓨터로 재현해 작곡하는 과정을 연구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는 음악창작 법칙을 밝히는 데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곡가가 만든 노래와 인공지능이 작곡한 노래는 그 작곡 방식의 근원적 차이와 결과물의 질적 격차 때문에 제대로 된 음악창작 법칙을 도출해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죠.

근래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음악창작 법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응용기술 과학이 특화된 미국 매사추세츠주 워체스터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WPI)에서 발표된 논문 ‘실시간 MRI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을 사용한 음악 작곡’에 따르면, 실시간 창작연주 즉, 재즈 즉흥연주를 하는 연주자의 뇌 중에서 내측 전전두엽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미지 출처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워체스터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WPI)에서 발표된 시난 아사드의 논문 ‘실시간 MRI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을 사용한 음악 작곡’
이미지 출처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워체스터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WPI)에서 발표된 시난 아사드의 논문 ‘실시간 MRI 바이오피드백 시스템을 사용한 음악 작곡’

위의 재즈 즉흥연주를 하는 연주자의 뇌를 3차원 영상화 한 이미지를 보면, 뇌 왼쪽 가운데 ‘배측면 전전두엽 피질 (背側面 前前頭葉皮質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부분은 활성화되지 않아 파랗거나 초록색으로 보이는 반면, 뇌 왼쪽 가운데 아래 ‘내측 전전두엽 피질(內側面 前前頭葉皮質medial prefrontal cortex)’과 뇌 중간 가운데 부분 ‘감각운동피질 (sensorimotor)’ 부분들이 활성화 되어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즉흥적으로 음악을 창작하는 연주자의 뇌의 어떤 부위가 활발히 움직이는가 보여준 이 연구는 음악창작 법칙의 발견을 향해 한발짝 더 나아간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6하 원칙’으로 따져보았을 때 이 연구결과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까지는 밝혀냈지만, 음악창작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인 ‘왜, 어떻게’는 알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왜, 어떻게 갑자기 빅뱅이 시작되어 우주가 생겨나게 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왜, 어떻게 갑자기 무의식 속에서 영감의 불꽃이 터져 멜로디가 쏟아져 나오게 되는 건지 아직까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과 ‘왜, 어떻게’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깊고도 넓어서 마치 건널 수 없는 크레바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음악을 만드는 창작법칙에 대한 연구가 ‘왜, 어떻게’의 심연에 가로막혀 있는데 반해, 왜,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들까 하는 것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래도 상당히 과학법칙에 가까워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음악을 만드는 창작법칙에 대한 연구가 ‘왜, 어떻게’의 심연에 가로막혀 있는데 반해, 왜,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들까 하는 것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래도 상당히 과학법칙에 가까워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돼 온 민주주의가 2500여년의 연속적 불연속적 역사 검증과정을 거치며 그 타당성을 증명해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민주주의는 양극화 해소 등 경제 사회 문화 부분의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또다른 법칙화의 길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960~70년대 한대수가 ‘물 좀 주소’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던 민주주의를 이 시대에 맞는 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인문과학 사회과학의 실험이 꼭 필요한 것이죠. 물론 음악과학과 함께, 또 음악과학 실험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사랑과 평화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한대수 ‘물 좀 주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lbFSRaowTA
한대수 ‘물 좀 주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lbFSRaowTA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한대수 ‘물 좀 주소’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18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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