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개막한 뮤지컬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가스통 르루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두 작품은 마치 ‘이란성 쌍둥이’와 같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팬텀>. 한국에선 흥행에 성공할까? 비슷한 듯 다른 두 작품을 비교해본다.
팬텀에만 있다…과거·가면들·발레
①팬텀의 과거: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보다 원작 소설에 더 충실하다. <오페라의 유령>에 언급되지 않았던 팬텀의 과거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가 왜 괴물로 태어났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등 ‘막장 드라마’ 같은 뒷얘기가 하나 둘 양파껍질처럼 벗겨진다. 또 <오페라의 유령>이 팬텀·크리스틴·라울의 ‘삼각관계’에 집중한 것과 달리, <팬텀>은 불우한 과거를 가진 팬텀과 그것을 이해하고 감싸려는 크리스틴의 ‘인간적 교감’에 집중한다.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이 비워둔 스토리의 여백을 꼼꼼히 메우는 셈이다.
②팬텀의 변신 가면: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면은 팬텀의 숨겨진 어둠을 상징한다. 하지만 <팬텀>에서는 팬텀의 인간적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감정이 바뀌는 순간마다 그가 재빨리 바꿔 착용하는 가면은 분노(붉은색)·사랑(흰색)·수치심(눈물 한 방울) 등 다양한 감정을 반영한다. 공연을 위해 무려 7종 29개의 가면이 제작됐다.
③정통 클래식 발레: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양념에 불과한 발레가 <팬텀>에서는 중요 요소로 등장한다. 팬텀의 과거를 드러내는 부분은 극장장 카리에르의 회상과 함께 발레 안무로 표현된다. 현재에서 과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약 10여 분간 펼쳐지는 이 장면은 <팬텀>만의 독창적 구성이다. 김주원·황혜민 등 정상급 발레리나가 캐스팅 된 이유다.
팬텀에도 있다…나룻배·오페라
①샹들리에·지하미궁 나룻배: 30만개의 유리구슬로 장식된 1톤 무게의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은 <오페라의 유령>의 백미다. <팬텀> 역시 4600개의 크리스털과 154개의 엘이디로 만든 180㎏짜리 거대한 샹들리에가 1막 마지막 장면에 추락한다. 200여개의 촛불과 드라이아이스 안개를 사용한 <오페라의 유령>의 나룻배 신 역시 <팬텀>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화려하고 압도적이지만, 이 두 장면 때문에 <팬텀>은 더더욱 <오페라의 유령>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②뮤지컬 속 오페라: 파리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한 만큼 두 작품 모두 오페라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 <오페라의 유령>에는 <한니발><일 무토><돈 주앙> 등 3편이 나오는데, 모두 가상의 작품이다. 반면 <팬텀>에는 <리골레토><아이다><라 트라비아타><발퀴레><요정의 여왕> 등 실존 명작 오페라 5편이 ‘극 중 극’ 형식으로 등장한다. <팬텀>은 오페라 요소를 더 강조하기 위해 크리스틴 역에 임선혜·김순영 등 현역 성악가를 캐스팅 했다.
팬텀에는 없다…귀에 탁 꽂히는 노래
<팬텀>에는 한국 초연을 위해 제작된 4곡을 포함해 무려 30곡의 넘버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페라의 유령>의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 ‘뮤직 오브 더 나잇’, ‘싱크 오브 미’ 같이 귀에 꽂히는 넘버가 없다. 크리스틴과 팬텀 등 등장인물 모두 천정을 뚫을 듯 한 고음을 앞 다퉈 자랑하지만, 주 멜로디라 할 선율이 없다는 점은 큰 약점이다. 클래식 발성을 훌륭히 소화해낸 가수 박효신, 천상의 목소리를 뽐낸 성악가 임선혜, 우아하고 테크니컬한 발레를 선보인 김주원 등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캐스팅이 그나마 약점을 희석시킨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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