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슬픈 장면에선 웃음이…웃긴 장면에선 눈물이
‘제2의 새뮤얼 베케트’로 불리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서쪽 부두>가 국내 무대에 처음 올랐다. 콜테스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것은 지난 2002년 <로베르토 쥬코> 이후 두번째다.
<서쪽 부두>는 비수를 꽂는 듯한 강렬한 언어로 삶의 모순을 파헤치는 콜테스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1989년 41살의 나이에 에이즈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러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닌 콜테스는 미국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서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버려진 창고를 발견한다. 콜테스는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맨해튼의 버려진 부둣가를 배경으로 돈과 욕망으로 점철된 밑바닥 인생들의 갈등을 그렸다. 남미에서 온 불법체류자 가족, 패가망신한 회계사 콕과 그를 따르는 모니카, 사기꾼 같은 아시아계와 30대 흑인 남자 등 남루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회의를 느껴 공산당을 탈당했지만, 콜테스에게 밑바닥 인생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학로의 스타 연출가 박근형(극단 골목길)은 콜테스가 희곡 말미에 붙여놓은 ‘서쪽 부두의 연출을 위하여’를 십분 활용해, ‘웃기는 장면을 슬프게, 슬픈 장면을 웃기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으로 9월28일부터 지난 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됐으며, 곧 재공연될 예정이다. 콜테스의 작품 세계가 궁금한 분들에게는, 산울림극단이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으로 지난 5일부터 시작해 한달 동안 상연하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추천할 만하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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