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은 일찌감치 동났다. 해마다 6월말이면 마치 성지순례를 떠나온 순례자들처럼 전세계에서 온 음악팬들이 저마다 짐보따리를 메고 영국 서머싯으로 몰려온다. 1970년 소박한 농장 공연으로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뮤직 페스티벌이 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한국 뮤지션들도 이 줄에 섰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 뮤지션들이 글래스톤베리에 선 데 이어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올해 축제도 이디오테잎, 최고은, 적적해서 그런지 등 3팀이 간다. 음악인들의 버킷 리스트인 이 무대에 서는 그들을 만나 축제의 설렘을 미리 들었다.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 “영국에서 출발해 유럽 6개 축제 순회합니다”
“우리한테 첫눈에 반하게 만들고 싶다.” 25일 밤 10시(현지시각) 글래스톤베리 실버헤이즈 무대에서 연주할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은 “최대한 이디오테잎다운 곡들로 무대를 채우겠다”고 했다.
이디오테잎의 올 여름은 뜨겁다. 25일을 시작으로 27일 독일 퓨젼 페스티벌, 28일 네덜란드 문디알 페스티벌 등 유럽 6개 음악축제를 돌아다니며 연주한다. 신디사이저 6대와 드럼, 여러 전자 장비로 연주하는 그들은 150㎏ 무게 짐을 지고 스위스에서 포르투갈까지 20시간을 이동하는 등 모두 108시간을 버스로 달리는 고난의 행군, 아니 영광의 행군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기대되는 무대는 역시 글래스톤베리다. “흥분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흥분하면 셋중 하나는 반드시 맛이 간다. 제제형은 이마에 핏줄이 돋고, 디구루 형은 땀에 젖는다. 나는 괴성을 질러버린다.” 드럼을 맡은 디알의 말이다. 이디오테잎은 디구루가 프로듀서를 맡고, 제제가 신디사이저 연주를, 디알이 드럼을 두드리는 3인조 밴드다.
드럼과 전자음을 섞어서 록밴드처럼 디제이처럼 연주하는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한국 대중음악에서 독특했지만 외국인들도 첫눈에 반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같은 악기라도 우리가 연주하면 좀 다르다. 이런게 체취 아닐까?”(디구루) “우리 음악은 관객과 소통이 아니라 설득이거나 질문에 가깝다. 이런 음악 어떠냐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제제)
이디오테잎은 한달동안 유럽을 돌고 7월25일 안산 엠벨리 록페스티벌에 설 예정이다.
작년 이어 두번째 참가 최고은 “자양분 같은 무대죠, 잘하면 또 그 다음이 생겨요”
이디오테잎보다 2시간여 앞선 같은 날 저녁 7시30분에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무대에 오른다. 이번 축제에서 오프닝 공연과 걸리 아우터 내셔널 무대에서 2번 공연하게 될 최고은은 지난해 이미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글래스톤베리에 다녀왔다. “마음이 벅차 노래하다가도 눈물이 고이곤 했다”는 그의 공연은 지난해 축제 스태프들이 뽑은 최고의 공연 중 하나였다.
“물도 전기도 귀해서 진흙탕에서 뒹굴었던 장화를 씻기도 어려운 곳인데 그 불편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어요. 메인 공연구역인 피라미드 존에 가면 언덕에 사람이 꽉 차 있는데 여기가 글래스톤인가, 문득 설레곤 했어요.”
한번 더 올 기회가 있다면 “자신안에 새로운 노래가 많이 쌓여있길 바랬는데”, 생각보다 그때가 일찍 찾아왔다.
올해 공연에선 핸드팬 같은 새로운 악기에다 지난해 말 발표한 첫 정규음반에 실린 노래도 넣을 예정이라고 했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음색으로 시작한 최고은의 음악은 밴드와 새로운 노래를 만나 살이 오르는 중이다.
“어떻게 하면 음악을 오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제겐 그 자양분이 국악이죠. 2010년 데뷔할 때 비하면 갈수록 말에 힘이 생기고 성숙한 부분이 생겼는데 음악으로 표현되면 좋겠어요. 이번 글래스톤베리도 제겐 자양분이죠. 잘하면 또 그 다음이 생기니까.”
21일 5시 서울 홍대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선 최고은의 2015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투어 기금마련 공연이 열린다.
사이키델릭 록밴드 적적해서 그런지 “소속사 기획사 그런 거 없어요, 준비는 셀프”
2007년 ‘커트코베인 트리뷰트 공연’에서 란제리만 걸치고 ‘헤어 스프레이 퀸’을 연주하며 데뷔했던 그들, ‘적적해서 그런지’도 글래스톤 베리로 간다.
적적해서 그런지는 함지혜(기타), 이아름(보컬), 심효정(베이스), 이경현(드럼)이 연주하는 사이키델릭 록밴드다. 4명중 3명이 여자인 이 밴드는 불규칙한 리듬에 일그러진 보컬과 기타소리로 걸그룹과 대척점을 이루는 음악을 해왔다.
케이팝에 익숙할 법한 외국의 뮤지션들이 내한 공연때 그들을 부르고, 대만 스프링스크림 국제 페스티벌 같은 무대에 초청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대중적인 밴드도 아니니 하고 싶은대로 하자는 주의인데 지난해 울산 에이팜 쇼케이스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글래스톤베리 기획자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이런 날이 올줄은 몰랐다.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기타리스트 함지혜의 말이다.
소속사도 기획사도 없는 그들은 글래스톤베리 직후 런던과 베를린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디아이와이(DIY)식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웃는다. 홍대 뮤지션들도 디아이와이 공연준비에 동참했다. 1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에선 아폴로18, 단편선과 선원들, 피해의식이 함께 하는 ‘적적해서 그런지 유럽투어 후원파티’가 열릴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
작년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하는 최고은
사이키델릭 록밴드 ‘적적해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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