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빕스코우가 죽음을 기념하는 방식을 주제로 만든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 ‘뻣뻣한 목의 방’(The Stiff Neck Chamber). 대림미술관 제공
헨리크 빕스코우 아시아 첫 전시회
덴마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뮤지션·설치미술가·사진가 활동
그의 모든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덴마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뮤지션·설치미술가·사진가 활동
그의 모든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은 늘 어둡기만 한 걸까?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물 뿐일까? 패션쇼를 오감으로 느끼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에 ‘다른 게 있다’고 답할 법한 작가의 전시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덴마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뮤지션·설치미술가·사진가 등으로 활동하는 헨리크 빕스코우의 아시아 첫 전시회다. 지난 몇 년 동안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틈틈이 작업해온 사진과 설치작품은 물론 전시장에 흐르는 배경음악까지, 그의 창작물은 상상력에 한계가 없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여성의 가슴을 과장되게 만화처럼 표현한 조형물들과, 그 사이에 배치된 컬렉션 의상들은 전위적이면서도 재기발랄하다. 지난 2007년 파리패션위크 봄/여름 컬렉션을 변주한 작품으로, 실제 쇼에선 모델들이 조형물 사이에 누워있는 무대를 연출해 당시 패션위크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우리의 하회탈이 옷으로 변신한 것마냥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원피스, 마치 테니스공의 절개선을 따라 잘라 펼친 뒤 이를 다시 이어붙인 것처럼 만든 점퍼, 정교하고 촘촘하게 네모지게 칼자국을 낸 뒤 잘린 부분을 종이접기하듯 접어 입체감을 살린 카디건 등 그가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들도 위트가 넘친다.
과테말라 사람들이 죽은 이들과 소통하려고 연을 날려보내는 모습과 도살장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린 닭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도 엉뚱한 상상력이 넘친다. 천으로 만든 플라밍고 200여개를 천장에 거꾸로 매달았는데, 천장에 붙어 있는 몸통 부분은 연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플라밍고의 목은 숲과 미로를 연상시킨다. 무겁고 무서운 죽음의 이미지를 가볍게 비틀어본 것이다.
사막을 헤매는 유목민을 위한 은신처 조형물, 민트를 주제로 한 컬렉션을 ‘오감’으로 확장하기 위해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민트향 사탕, 사진기와 모델 사이에 낡은 옷걸이로 비눗방울을 불어넣어 신체의 연약함을 몽환적으로 표현한 누드 사진 등도 놓치기엔 아쉽다. 목판으로 만든 거꾸로 된 사람 얼굴 퍼즐 시리즈도 유쾌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헨리크 빕스코우는 방한 당시 ‘왜 사람 얼굴을 거꾸로 표현했느냐’는 미술관 직원의 질문에 “내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머리가 거꾸로 돼 있나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12월21일까지. 매 시각 정시에 전시 설명회가 열린다. (02)720-0667.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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