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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맡겨봐, 니 귀에 착 감기는 노래 나올 때까지

등록 2015-09-06 19:34수정 2015-09-07 10:27

‘알아서 선곡’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
오늘 당신은 음악을 선택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들었을 뿐. 지난 8월5일, 음악 앱 ‘비트’가 500만 회원을 넘었다. 지금 속도를 볼 때 올해 말엔 1천만 회원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트는 2014년 3월 출시된 국내 첫 음악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다. 2014년 9월엔 삼성전자가 자사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에서만 사용 가능한 음악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 ‘밀크’를 시작했다. 올해 7월, 이 서비스는 출시 9개월 만에 앱 다운로드 횟수 400만을 기록했다.

디지털 음악 유통사들이 제공하는 음악 추천 서비스들.  누리집 화면 갈무리
디지털 음악 유통사들이 제공하는 음악 추천 서비스들. 누리집 화면 갈무리
■ 온라인은 디제이 시대 지금까지 디지털로 음악을 듣는다고 하면 멜론, 지니, 엠넷 같은 음원유통 사이트에 접속해서 원하는 음원을 찾아 내려받거나 듣기를 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음악 스트리밍 라디오는 어떤 채널을 선택하면 라디오처럼 주제에 맞게 선곡된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는 서비스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음원유통업계 1위인 멜론의 회원이 883만명, 2, 3위인 케이티(KT)뮤직 지니와 엠넷은 220만명 수준이다. 숫자로만 본다면 업계 자리를 바꿔놓는 음악 스트리밍 라디오의 급격한 성장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이 사용자 선곡에서 디지털 디제이의 선곡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음악 유통사들이 제공하는 음악 추천 서비스들.  누리집 화면 갈무리
디지털 음악 유통사들이 제공하는 음악 추천 서비스들. 누리집 화면 갈무리
2004년 11월 음악포털 멜론이 문을 열면서 디지털 음원 서비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멜론 서비스 화면을 보면 많이 들은 음악, 새로 나온 음악 같은 메뉴는 작게 보이는 반면 검색 화면과 자신이 고른 음악을 보여주는 화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음원 차트와 새로 나온 음악 같은 메뉴가 중심을 차지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디지털 음원 유통이 본격화하면서 음원 차트의 영향력이 막대해졌다. 쇼핑몰에서 남들이 사는 상품을 나도 사려는 경향을 ‘랭킹 효과’라고 부른다. 음악쇼핑몰과도 같은 디지털 음원 서비스에서 ‘톱 100’이라고 하는 음원 차트를 클릭하면 바로 음악을 듣거나 살 수 있기 때문에 차트 중심으로 음악을 선택하는 랭킹 효과는 전통적인 음반 판매보다도 더욱 뚜렷하다. 차트와 추천, 두 가지가 음악 소비에서 결정적 구실을 한다. 케이티뮤직 통계론 음원차트를 눌러 순위대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40%, 추천받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20%다. 나머지 40%는 검색을 해서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다. 케이티뮤직 쪽은 “추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차트와 검색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게으른 청취자의 등장 최근 1년 새 음원유통사들은 차트 중심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2014년부터 멜론은 멜론디제이, 멜론 라디오 등 음악 추천 메뉴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검색 시대에서 개별 곡 내려받기나 1~100위 차트 중심의 음악 서비스를 지나 이제는 시대별 차트, 오늘 추천 곡 등 음악 큐레이션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비트는 “선곡 고민 없이 즐기는 음악”을 내세웠다. 무슨 음악을 들을지 고르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 그토록 수고스러운 일이었을까? 비트의 이주형 이사는 “우리가 디지털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피로감이 커졌다. 우리는 지금 시대 음악 소비자들을 ‘게으른 청취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니가 500만곡, 나머지 음원플랫폼들은 300만곡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등 디지털 음악 세계는 해마다 커지고 있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유한하다. 200개가 넘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밀크는 60만~70만곡이 채널에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비트는 ‘사랑할 때’ ‘세기의 팝’ 같은 주제별로 음악이 나오는 채널을 60개 운영하고 있다. 이들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에선 음악을 무료로 듣는 것이 기본이지만 돈을 내면 검색을 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저장할 수도 있다. 밀크와 비트 모두 10% 미만의 ‘부지런한 청취자’들이 돈을 내고 음악을 스스로 선택한다. 나머지 90%는 무료로 음악을 듣고 마는 것이다.

■ 수동적 소비의 함정 검색에서 차트로, 그 다음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별 큐레이션 서비스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밀크와 비트 모두 올해 안에 맞춤별 추천음악을 제공하는 개인 디제이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한 음원유통사 관계자는 “통신사를 기반으로 한 유통사는 이미 모두 빅데이터를 쌓아 왔으며 음악 추천이 가능한 알고리즘도 개발했다고 보면 된다. 개인 정보 활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면 결국엔 음악은 개인 추천 시대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빅데이터’ 활용 말고도 음악을 완전히 무료로 만들었다는 점, 사용자들의 자발적 선택을 줄였다는 점 등에서 스트리밍 라디오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추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도 있다. 경희대 경영학과 박재홍 교수는 “지금까지 음원유통사들은 자기 회사와 관련된 음악을 추천하고 전체듣기 서비스를 통해 많은 고객들에게 강제로 듣게 하는 방식으로 음원 차트 상위권을 독식해왔다”고 주장하며 “먼저 공정한 기준을 가진 추천 시스템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점점 더 우리는 음악을 선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핸드폰만 켜면 ‘내가 좋아하는 곡’ 리스트가 있지만 내가 왜 이 음악을 좋아하게 됐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편리하지만 위험한 경험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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