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83>의 주연을 맡은 배우 나문희(오른쪽), 박인환씨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공연계 ‘중장년 관객’ 모시기
20~30대 젊은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던 공연계가 최근 들어 중장년 관객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중장년층이 객석을 점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터파크가 최근 5년 동안 공연예매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40대 이상 공연 예매자 비율은 2010년 약 14%에서 지난해 20.9%로 크게 늘었다. 한 경제연구소에선 올 초 경제력과 문화적 욕구를 갖춘 1차 베이비붐세대(1953~62년 출생)에 ‘백금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백금이든 황금이든, 공연계에 바야흐로 ‘골든 에이지’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오는 30일~11월15일에는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담은 창작뮤지컬 <서울 1983>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뮤지컬까지 불어오는 공연계 새바람의 풍향을 가늠해본다.
뮤지컬 ‘서울 1983’ 나문희·박인환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양백천)
“살아있다면야 왜 못 만나겄소? 어여 가시오.”(돌산댁)
“그러리다. 부디 행복하게 남은 생 살구려. 내 그렇게 기도할 것이니….”(양백천)
지난 13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 뮤지컬 <서울 1983>의 마지막 대목을 연기하는 배우 박인환(70)과 나문희(74)의 목소리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먹먹함을 품고 있었다. 6·25 전쟁 통에 헤어진 뒤 30년 만에 압록강 국경에서 만난 부부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전쟁이 낳은 분단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 그리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억척스럽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 눅눅한 몇 마디 대사만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전쟁·이산…이 작품 다큐 같아
40대 이상은 다 기억할 거예요” “이산가족 찾기가 배경이지만
영화 국제시장과는 좀 달라” “참, 손수건은 꼭 가져오세요”
“이 작품은 무척이나 다큐적이에요. 딱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이야기죠. 전쟁 통에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자식 넷을 키워낸 어머니. 40대 이상은 다 기억할 거예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나왔던 노래.”(나문희) 돌산댁이 노래를 흥얼거리자 남편 양백천이 말을 받았다. “기자양반이 아직 젊어서…. 그래도 영화 <국제시장>은 봤죠? 우리 작품의 배경인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며칠 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잖아요.”(박인환)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뮤지컬 <서울 1983>의 배경을 설명했다. 드라마 <몽실언니>, <아들 녀석들>을 비롯해 영화 <수상한 그녀>, <조용한 가족> 등에서 함께 출연하며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터다.
“에이~ <마당놀이> 윤문식·김성녀, <전원일기> 최불암·김혜자 커플도 있는데…. 뭐 우리도 이젠 눈빛만 봐도 딱 통하는 건 있어요.”(박), “우리 둘이야 합이 맞는데, 오히려 식상할까봐, 신선함이 떨어질까봐 걱정이죠.”(나)
이번 작품에서 5곡의 솔로 곡을 소화해야 하는 나문희는 정신적·육체적 부담감이 너무 크다고 했다. “연기하면서 중간에 노래를 하려니 호흡이 잘 안돼요. 나이가 들어 그런가? 요새는 아주 곰국을 한 통 끓여 먹으면서 연습을 한다니까요.” 하소연을 하면서도 “맨 마지막에 ‘받은 명, 다 풀고 가니 이제는 미련 없어.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두고 가려네~’라고 말하듯 노래하는 장면은 정말 뭉근하게 심금을 울린다”고 자랑을 했다. 이번 작품에는 창작곡 15곡 외에도 ‘상록수’, ‘꽃마차’, ‘아침이슬’ 등 70~80년대를 대표하는 국민가요 11곡이 등장해 시대의 감정을 표현한다.
“나는 노래 부담은 없는데, 젊은 시절부터 노년 시절까지 나오니까. 이제 70살인데 젊은 연기를 하면 너무 (나이) 들어 보일까봐 그게 걱정이에요. 허허허.”(박) “난 목소리가 늙지는 않아서…. 하하하. 대극장이니까 (잘 안 보여서) 가능하지 않을까?”(나)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 1983>은 뮤지컬판 <국제시장>, 어머니판 <국제시장>으로 불렸다. 영화 <국제시장>은 14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크게 흥행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념적 편향성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국제시장>과는) 좀 달라요. 극 중 큰아들은 사법시험을 치는데, 매번 낙방을 해요. 그 당시만 해도 누가 전쟁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하면 자식들은 취직도 안 되고, 공무원 시험도 못 치고 사회에서 낙오되기 십상이었잖아요? 그런 안타까운 사연들이 다 녹아 있어요.”(박) “분단이 한반도에 어떤 아픔을 남겼는지, 평화와 통일이 왜 필요한지를 더 생각하게 되는 작품인 셈이죠. 20일부터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정말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나)
드라마·영화 등 모든 일정을 다 접고 오직 <서울 1983>에만 ‘올인’을 하고 있다는 두 사람. 사오십대 이상을 위한 창작 뮤지컬이라 관객들에 대한 책임감도 더 크다고 했다. “우리 개런티를 깎아서라도 더 많은 분들이 보러 올 수 있도록 표 값을 내렸으면 좋겠어요. 평생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온 50~70대들이 오랜만에 마음 놓고 문화생활 좀 즐길 수 있게. 아이들하고 같이 오면 더 좋겠고요.”(박) “사실 개런티는 싸요. 드라마나 영화보다. 작품이 좋아서 하는 거지. 하하하.”(나)
두 배우는 마지막으로 “꼭 손수건을 준비해서 오라”고 당부했다. 잰걸음으로 연습실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에는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힘겹게 살아낸 돌산댁과 양백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듯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40대 이상은 다 기억할 거예요” “이산가족 찾기가 배경이지만
영화 국제시장과는 좀 달라” “참, 손수건은 꼭 가져오세요”
나문희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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