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이 쓰는 두건을 공간에 매달아놓은 송상희씨의 설치작품 ‘노처녀가’. 허공을 부유하는 듯한 두건 덩어리들은 고난받은 여성들의 원혼을 표상한다. 사진 노형석 기자
여성작가 송상희(45)씨의 신작들은 기묘한 변신을 거듭하며 존재를 증명해온 과거의 ‘이름 없는 사람들’을 불러낸다. 서울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 전시장 안의 영상 스크린 앞에 먼저 불려나온 화자는 판소리 ‘변강쇠가’의 옹녀다.
“여보소 저 송장아 혼령은 귀신 되고 신체는 송장이되, 무슨 원통 속에 있어 혼령은 안 헤치고, 송장은 뻣뻣이 섰노….”
장승을 땔감으로 썼다가 살을 맞아 선 채로 죽은 남편 변강쇠, 그의 주검을 보며 옹녀는 울부짖는다. 이 처연하고도 익살스런 사설이 캄캄한 영상 속으로 흘러간다. 변강쇠 송장 치러 온 사람들도 독기를 받아 잇따라 죽고 주검들이 서로 붙어버린 사설에 몰입하려는 찰나, 그 옆 다른 영상에는 한국, 오키나와의 민간인 학살 현장과 아프리카 난민선, 일제강점기 징용자, 위안부, 철원의 전쟁 폐허 등의 사진들이 쉴 새 없이 뒤바뀌며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 죄르지 리게티의 단말마 같은 피아노 음악과 올리비에 메시앙의 오르간 사운드가 그 사이로 스며들고,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식인 소설의 기괴한 대목들이 계속 나타난다. 우스우면서도 무서운 텍스트, 혼돈스럽지만 불편한 성찰을 이끄는 역사 이미지들은 실체가 없는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인 민중, 특히 소외된 여성에 대한 기억을 이끌어내는 소품이 된다.
“변강쇠가 하면 색녀와 색남의 음담패설로만 치부하는데요, 사실 그런 부분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대부분 조선 후기 비참하게 살며 삶을 부지해야 했던 유랑민들의 슬픈 사연들로 가득해요. 그들의 삶 자체가 20세기 세계와 이 땅에서 벌어진 소외된 이들의 비극과 다 연결되어 있다고 봐요. 이름 없는 자들이 겪었던 절박했던 삶의 숨결을 작가로서 드러내려는 게 신작의 의도였어요.”
작가의 말대로 전시는 공식화된 역사책에 추상화된 이들의 숨결을 색다른 텍스트와 이미지 등을 동원해 찾아내려는 집요한 노력을 담는다. ‘변강쇠가’의 텍스트와 연결되는 민중 수난사의 이미지를 재구성하기 위해 작가는 한국과 오키나와의 대량학살 현장과 철원 같은 휴전선 일대의 분단 유산들을 낱낱이 답사하고 기록했고, 근대 여성운동사 관련 사료와 사진들,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와 고서들도 뒤지며 아카이브 차원으로 작업을 확대시켰다. 이렇게 찾은 방대한 역사, 인류학적 이미지들을 통속, 비극, 공상으로 들어찬 문학적 텍스트와 설득력 있게 연결시켰다는 점이 돋보인다.
소외된 여성성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독특하게 형상화한 것도 또 다른 이 전시의 특장이다. 전쟁, 이념, 제국주의로 수난받은 과거 여성들의 얼굴 드로잉과 ‘노처녀가’란 제목의 설치작업을 전시장 뒤편에 함께 놓은 것이 그렇다. 텅 빈 전시장 공간에 차도르 같은 여성용 두건들을 매달아 놓은 설치작품 ‘노처녀가’는 두건 표면에 결혼 못한 여성의 설움과 한을 풀어낸 조선 후기 내방가사 ‘노처녀가’의 글귀들을 붉은빛으로 투사하면서 소외된 옛 아녀자들의 곰삭은 아픔을 피부에 와닿게 형상화해냈다.
작가는 2000년대 이래 역사에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한 존재들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신화, 과거사를 현재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버려진 알’(2003), 1983년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 당시 희생자들의 내면을 유품들을 통해 좇아간 ‘신발들’(2010), 카메라를 두발에 묶고 일본 오소레산을 돌며 과거의 모든 망자들을 추억한 퍼포먼스 영상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2010) 등의 전작들은 이번 신작들의 단단한 지반이 됐다. 잊힌 사람의 역사를 끄집어내는 미술에 10여년 몰입하면서 더욱 명쾌해지고 깊어진 작가의 역사 성찰 작업들이 앞으로 어떻게 가지를 쳐나갈지 주목된다. 12월13일까지. (02)396-480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