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요 도기. 사진 호림박물관 제공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 전시
해주요 백자의 발랄한 무늬
회령요의 독특한 발색 눈길
해주요 백자의 발랄한 무늬
회령요의 독특한 발색 눈길
“어? 이건 옛날 중국집 짜장면 그릇 같은데….”
나이든 관객들이라면 푸르뎅뎅한 해주요 백자들의 단순 간결한 무늬를 보고 이런 추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달 초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지하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은 지난 세기 한국인의 삶과 함께했던 이 땅의 근대 도자기들을 만나는 자리다. 민화풍의 무늬에 청색, 녹색의 경쾌한 색감이 돋보이는 해주백자와 회갈색의 오묘한 빛깔이 옹기 모양새에 어우러진 회령도기 수작 수십점이 나왔다.
해주요 백자들은 19세기말~20세기초 황해도 해주 일대 민간 가마에서 대량생산된 도자기들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생활도자 디자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나 조악하다는 이유로 학계의 외면을 받다가 새롭게 재조명을 받게 됐다. 전시장의 병과 항아리들은 조선 말기까지 도자기의 지배적 유행이었던 청화백자의 외형과 무늬를 본떴지만, 청색, 녹색의 빛깔에 휙휙 그은 선으로 물고기나 꽃, 풀, 덩굴을 거칠고 단순하게 그려넣었다는 점이 다르다. 대충 그린 듯하면서도 발랄하고 경쾌하다.
특히 대정(일왕의 연호) 6년(1917)에 검단 자기점에서 만들었다는 명문이 쓰인 백자청화운룡문병은 연대와 생산지가 유일하게 확인되는 해주백자로, 남아 있던 청화백자 양식이 근대기 변질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손잡이 달린 옹기 형태에 청화, 철화 안료를 섞어 물고기, 꽃 등의 문양을 넣은 백자청철화물고기무늬 항아리는 해주백자의 전형으로 꼽히는 대표작. 백자청화모란무늬 항아리는 일본에서 수입한 녹색 안료를 쓰고 표면에 무늬 전사지를 붙여 화초문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구도에서 근대화 영향으로 백자가 급속히 세속화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전시장 뒤켠의 회령요 도기들은 장독, 옹기, 뚝배기 같은 질박한 외형에 회색, 갈색, 청색 빛깔들이 표면에 한데 아롱지면서 생기는 독특한 시각적 매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짚 태운 잿물로 만든 특유의 유약을 입히면서 생긴 발색이다. 고급스러운 때깔과 달리 용도는 장류를 담거나 끓이는 조리용기 등으로 한정됐다. 함북 회령에서 생활용기로 쓰던 이 도기들의 뿌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북방 균요가마에서 작업하던 중국 장인들이 금나라 등의 북방 유목민 왕조에 의해 두만강 부근에 이주하면서 오묘한 빛깔의 회령 도기가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조선도공들도 규슈섬 가라쓰에서 비슷한 도자기를 만들었다.
특별전을 보고 나면 2~4층의 명품 상설전이 기다린다. 고려시대의 <밀교대장>과 대학자 이색의 서문이 있는 <나옹화상어록>, 조선 왕실의 태실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상감연판문 뚜껑 등은 처음 공개된다. 내년 2월27일까지. (02)541-3523~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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