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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일본 팝아트와 만난 불화

등록 2015-12-10 21:08

무라카미 다카시 도쿄에서 대형 개인전

일본풍 팝아트로 서구 미술계 각광
2011년 동일본 대지진서 영감 얻은
‘오백나한도’ 속 기괴한 인물·동물들
자연 앞 인간의 무력감·절망 담아내
모리미술관 전시장에 내걸린 대작 오백나한도(일부). 중국, 일본의 옛 불화의 이미지에 팝아트가 버무려져 색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작가의 야심작이다. 사진 노형석 기자
모리미술관 전시장에 내걸린 대작 오백나한도(일부). 중국, 일본의 옛 불화의 이미지에 팝아트가 버무려져 색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작가의 야심작이다. 사진 노형석 기자
세계 미술사상 최대 규모의 거작이 일본 도쿄에 등장했다. 각각 길이 100m, 높이 3m를 넘는 4개의 화폭에 요괴 같은 형상의 기괴한 인물과 상상의 동물들이 그려진 거대한 현대 불화가 눈길을 압도한다.

도쿄 도심 롯폰기에 있는 명문 미술관인 모리미술관에는 요즘 동양의 전통 불화 나한도의 이미지를 팝아트풍으로 재해석한 대작 그림들이 잇따라 내걸렸다. 루이뷔통 등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작품과 프랑스 베르사유궁 전시로 화제를 뿌렸던 일본 팝아트 대가 무라카미 다카시(53)가 10월31일부터 열고 있는 ‘오백나한도’전이다. 90년대 이래로 미국 뉴욕과 프랑스, 영국 등 서구 미술계에서 일본풍의 팝아트 제이팝과 슈퍼플랫 회화를 선보여 각광받은 그의 금의환향을 과시하는 전시다.

대표작인 오백나한도는 불교에서 부처의 제자이자 수행자로 중생을 성불시키고 구제하는 나한 오백명을 4면에 걸쳐 그린 작품으로 그 자체가 세계이자 우주를 표상한다. 중국 고대 음양오행 사상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신으로 지칭되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의 사신도가 각 면마다 등장하며, 한가득 그려진 갖가지 표정과 몸짓의 크고 작은 나한상들과 함께 얽혀들면서 요지경을 빚어낸다. 원래 오백나한도는 한·중·일 삼국의 전통 불화의 중요한 소재들 가운데 하나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같은 일본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팝아트 작업을 펼쳐온 무라카미가 작심하고 전통 불화의 오묘한 세계를 통속적인 팝아트로 재해석해 내놓은 득의작이라고 할 수 있다. 4개 면의 나한도들이 워낙 크기 때문에 두 개 전시장을 왔다갔다하면서 작품들을 꼼꼼히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작가는 2011년 벌어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을 보고 들으면서 오백나한도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자연적 재앙을 대하는 인간의 무력감과 절망, 유한한 삶 속에서 종교와 예술이 제시할 수 있는 심오한 성찰 등의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일본 각지에서 모집한 200명 넘는 대규모 보조인력들과 함께 수년간 그린 작업 과정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대작 중 일부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빨리 일본을 지원해준 중동의 부국 카타르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2012년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처음 전시됐다. 이후 사신도 개념으로 4폭의 완성품을 따로 만들어 모리미술관의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이게 됐다고 한다.

오백나한도 외에 다수의 신작들이 나온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등록상표인 악동 괴물 같은 캐릭터상품 이미지들보다 ‘공’(空), ‘원상’(圓上)의 세계 같은 불교 철학적 화두들을 흘러내리는 원 그림이나 온갖 괴물들이 수미산처럼 첩첩이 층을 이루고 황금빛 불꽃 속에 해골이 깃든 조형물 등을 통해 쏟아내고 있다. 또 하나 주목되는 건 일본을 대표하는 원로 미술사학자인 쓰지 노부오 전 도쿄대 교수가 전시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쓰지 교수가 동양미술사 옛 거장들의 작업을 제시하고 무라카미가 이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작업들을 둘의 대화 내용과 함께 전시한 모습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2016년 3월6일까지.

도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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