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전시장에서 비누로 빚은 도자기 작품들 앞에 선 신미경 작가.
상하이 학고재 신미경 개인전
향긋하면서도 어질어질한 파라핀 냄새가 코를 휘감는다. 그 냄새를 따라 전시장 입구의 금박 입힌 불보살상에서 시작해 온통 푸른빛으로 덮인 크고 작은 그림들과 명, 청대의 화려한 채색 도자기, 고대 서구 조각상과 불상들을 훑어본다. 가장 안쪽 붉은 방 안의 유령처럼 투명하게 놓인 붉은빛 항아리, 병들까지 뜯어보면, 이 작품들의 재료가 똑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렇다. 여기는 비누들 세상이다. 몸을 씻기 위해 비비고 문질러 쉬 닳고 사라지는 비누들이 영원의 몸짓과 표정을 지닌 그림, 조각상이 되어 관객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인간 몸 씻기며 닳아없어지는 비누
거룩한 전시공간에서 문화재처럼
예술의 영원성·복제 등에 대한 성찰
화장실 뒀다 회수한 비누조각에선
압축적으로 유물화한 시간 드러나 학고재 화랑이 중국 상하이 시내 모간산루에 개설한 상하이 학고재에서, 19일부터 개관 2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신미경(48) 작가의 개인전 풍경은 ‘진기한 장식장’이란 제목만큼이나 이상야릇한 수집공간을 방불케 한다. 상하이 학고재가 자리한 모간산로는 시 도심 서북쪽 우쑹강 부근의 옛 공장지대를 리모델링한 신흥 미술지구다. 상아트를 비롯한 중견 화랑과 미술공간들이 활발히 전시를 벌이고 있는데, 신 작가의 학고재 전시는 관람 디자인이나 작품성 등에서 단연 우뚝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품작들은 ‘트랜스레이션’(번역)으로 이름 붙인 그간 주요 대표작들을 작가가 보기 편하게 망라해 연출한 것들이다. 16~20세기 유럽 수출용으로 빚은 중국 청화백자나 다채색자기 등을 재현한 비누도자기들이 현지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문양을 비누 덩어리에 상감기법으로 새기고 정교하게 형태를 다듬고 채색한 탓에 진짜 도자기 같은 착시감을 일으킨다. 하지만 쉽게 긁히며 단시간에 풍화한다는 점에서 예술품의 영원성에 대한 회의, 원본 작품에 대한 해석과 복제의 차이 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지는 작품들이다.
신 작가는 영국 런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0여년간 런던, 서울을 오가며 특유의 비누상들을 여러 연작으로 변주해왔다. 비누를 줄곧 써왔지만, 소재적 특성에만 빠지지 않고, 단단하고 명쾌한 미학적 개념틀을 끌어들인 작업을 만든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2004년부터 벌여온 ‘화장실 프로젝트’가 단적인 일례다. 이 프로젝트는 고전조각상 혹은 불상 모양 비누 조각을 공공 화장실에 비치하고 사람들이 세면을 위해 자유롭게 만지도록 한 뒤 거두어 전시, 소장하는 작업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아내리고, 뭉개지며 여러 형상으로 변형된 비누상을 전시장에 들여와 손댈 수 없는 작품으로 떠받들어 세우는 과정 자체가 장소 맥락에 따라 성격이 돌변하는 현대예술품의 흥미로운 개념적 변신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도 작가는 룽미술관 등 상하이 5개 미술 관련 기관의 화장실에 비누상을 놓고 쓰게 한 뒤 회수해 전시할 참이다.
“조각 예술의 영구성, 원본성에 대한 기존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화장실의 뭉개져가는 비누 조각이나 풍화되는 비누상들이 훨씬 압축적으로 작품이 유물화되는 시간성의 느낌을 드러내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물과 일상의 생명력이 실감있게 느껴지죠.”
중국과는 2008년 난징트리엔날레와 베이징 쏭좡미술관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2013년 그가 빚은 대형 비누 기마상을 전시한 대만 타이베이 미술관의 개인전은 국제적인 화제를 낳기도 했다. 작가는 “비누 작업에 이어 새로운 재료를 활용한 그림과 조각 작업들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31일까지.
상하이/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거룩한 전시공간에서 문화재처럼
예술의 영원성·복제 등에 대한 성찰
화장실 뒀다 회수한 비누조각에선
압축적으로 유물화한 시간 드러나 학고재 화랑이 중국 상하이 시내 모간산루에 개설한 상하이 학고재에서, 19일부터 개관 2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신미경(48) 작가의 개인전 풍경은 ‘진기한 장식장’이란 제목만큼이나 이상야릇한 수집공간을 방불케 한다. 상하이 학고재가 자리한 모간산로는 시 도심 서북쪽 우쑹강 부근의 옛 공장지대를 리모델링한 신흥 미술지구다. 상아트를 비롯한 중견 화랑과 미술공간들이 활발히 전시를 벌이고 있는데, 신 작가의 학고재 전시는 관람 디자인이나 작품성 등에서 단연 우뚝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스트’ 연작.
비누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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