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훈문화’ 전시장에 나온 고대 일본 토기 ‘하니와’들 중 여성상.
국립경주박물관 ‘일본의 고훈문화’ 전
3~7세기 초까지 일 문화 소개
‘하니와’라 부르는 특유 토기와
5세기 이후의 말갖춤 등 전시
‘임나일본부’ 설 허구성 보여줘
3~7세기 초까지 일 문화 소개
‘하니와’라 부르는 특유 토기와
5세기 이후의 말갖춤 등 전시
‘임나일본부’ 설 허구성 보여줘
‘임나일본부’설은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에서 유령처럼 출몰하는 논란거리다. 4세기 고대 일본의 지역연합체 국가인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란 기관을 두고 백제, 신라, 가야를 통치했다는 설인데, 20세기 초 일본 학자들이 주창한 이래 지금도 일본 우익 교과서 등에 종종 등장한다.
임나일본부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일본 역사에서 고훈(古墳)시대의 일부다. 3세기부터 7세기 초까지 높이 100~400m에 달하는 대형 고분이 줄줄이 등장했던 일본 역사의 여명기로, 백제에서 받아들인 불교로 문명을 이룩한 아스카시대의 바로 앞 시대다. 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그런 장고 모양의 대형 지배자 무덤, 이른바 전방후원분을 많이 쌓은 게 이 시대 특징이다. 한반도 삼국으로부터 무기, 말갖춤 등의 문물과 문자, 기술 등을 받아들이며 문화기반을 형성했던 때이기도 하다.
지난달 22일부터 국립경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일본의 고훈(古墳)문화’는 이 논란과 의혹투성이의 고대 일본 역사시대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다. 일본의 미개 시대라고 우리가 넘겨짚곤 하는 고훈시대의 실상을 당시 일본사의 핵심 무대인 간사이와 규슈 일대의 고분 유적 출토품들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국립나라박물관 등 일본 9개 기관에서 일본 국보(29점), 중요문화재(197점)들을 무더기로 대여해 현지에서도 보기 힘든 일본 고대 명품들의 성찬이 차려졌다.
전기 중기 후기 영역으로 갈라 고훈시대 양상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의 대표 유물은 ‘하니와(埴輪)’라고 부르는 특유의 토기들이다. 대형 봉분 주위에 열지어놓았던 장식품이다. 초창기엔 제물을 넣은 항아리 형태였다가 원통형으로, 후기엔 사람과 집, 사슴·돼지·말 모양 등의 다양한 형태로 갈라진다. 지배자 무덤을 사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후계자의 권위를 보증하고, 산 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상적 제례터로 중시했던 고대 일본인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전라도 해안 지역에도 이 시기 일본과 비슷한 장고모양 고분이 흩어져 있고, 비슷한 하니와형 토기가 출토된다는 점에서 당시 한-일 교류사의 복잡다단함을 떠올리게도 한다.
초창기 무덤에서 많이 나오는 청동거울들은 중국의 진·한·남조 제품을 직수입하거나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 특징이다. 고훈시대의 서막을 연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여왕이 위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100여개 거울을 들고 귀국했다는 중국 사서 기록에서 보이듯, 전쟁으로 지역 세력들을 통합한 뒤 중국에서 정통성을 인정받는 징표로 들여온 것들이다. 또다른 핵심 유물은 말을 탈 때 쓰는 기물인 5세기 이후의 말갖춤들이다. 단촐한 모양의 철제 발걸이부터 호화롭고 정교한 봉황장식이 새김된 나라 후지노키 고분의 국보 말띠드리개까지 삼국 말갖춤 디자인의 영향을 직접 수용한 흔적이 뚜렷하다.
이 전시품들은 역설적으로 임나일본부 설의 허구성을 좀더 명징하게 실증한다. 중국 사서 등에 일본은 3~4세기까지 말을 기르지 않았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전시된 말갖춤이나 철제 무기류들은 대부분 5세기께 이후 출토품들이다. 4세기 한반도에 진출해 200여년을 군사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실체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시기별 주요 고분들의 사진과 지도, 얼개 그림, 출토품, 복제품을 짜임새있게 배치해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스에키(단단한 경질 토기), 하니와, 우리와 다른 무덤양식 등에 대해 좀더 쉽고 입체적으로 풀이한 설명이 아쉽기도 하다. 2월21일까지. (054)740-7500.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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