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선 기획자와 출품 작가들. 왼쪽부터 이환권·조습·김기라 작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 윤상렬·홍경택 작가. 사진 노형석 기자
경원대 출신 작가들 ‘제3지대’ 전
홍경택·김기라·조습 등 11명
상호비평 장려한 학풍 반영
자유분방한 문제의식 담아
홍경택·김기라·조습 등 11명
상호비평 장려한 학풍 반영
자유분방한 문제의식 담아
1990년대말부터 서울대-홍익대 양강 구도의 철옹성을 깨고 국내 미술판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경원대 스타일’이 한자리에 모였다. 14일부터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이고 있는 ‘제3지대’ 전(24일까지)이다. 기존 주류 미술판과는 전혀 다른 감수성과 문제의식으로 2000년대 초반 청년미술의 새 산실이 됐던 경원대(현 가천대) 출신 작가 11명의 신·구작을 지하층부터 지상 6층에 이르는 전관에 내보이는 대형 전시다.
이 전시는 홍경택, 김기라, 조습씨 등 경원대 출신 소장, 중견 작가들의 작품들을 집약해 보여준다는 면에서 동문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맥과 세를 과시하는 데 치중해온 기존 미대 동문전과는 성격이 다른 난장에 가깝다. 파격적 형식과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변방의 하층문화에 주목했던 경원대 스타일이 200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변화에 미친 영향이 적지않았고, 출품작가 상당수가 이른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개성파 스타작가들이란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전시장 곳곳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소재와 매체로 풀어낸 출품작들의 다기하고 분방한 면모들이 펼쳐지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참여미술 진영의 작가로 활동하며 영화나 광고 등의 대중문화 이미지들을 두루 차용한 김태헌씨의 사회풍자적인 대작, 소품들이 묘한 향수를 자아내고, 4·3 항쟁 같은 우리 근대사의 질곡의 현장에 작가가 뛰어들어 독특한 현장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업을 찍은 조습씨의 사진들과 세계화·자본화 시대의 현실을 성찰하는 김기라씨의 극적인 영상 등이 지금 이곳의 현실을 미학적으로 직조해내려는 진보적 작가들의 고투를 드러낸다. 부스러질 듯한 미세조형물을 통해 독특한 내면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함진씨나 버려지거나 지나치기 일쑤인 일상의 소품, 잡동사니 등에서 또다른 세상 이야기를 풀어내는 배종헌씨, 납작하게 압축된 인물군상을 통해 일상의 중압감을 표현하는 이환권씨, 민들레 홀씨와 함께 떠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노동식씨의 환상적 설치작업은 작가들 나름의 집요한 관찰력과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패거리 의식이 없고, 각자도생식으로 자기세계를 표출하는 것이 경원대 스타일의 특징으로 비친다.
서울대, 홍대처럼 특정한 스승의 작업 흐름에 예속되지 않고 작업 동료로서 상호비평과 토론, 각양각색의 개성적 작업을 장려했던 이 학교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업들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큰스승인 윤범모 가천대 교수의 정년퇴임을 맞아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장, 이준희 <월간미술>편집장 등 학교 출신 미술인들이 의기투합해 마련했다고 한다. 기획자 김준기씨는 “세과시 목적은 절대 아니고, 2000년대 이래 한국 현대미술판에 일어난 다양한 변화의 일면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2000년대 초반 한국미술판을 풍미했던 당시 청년작가들의 작업 흐름을 추억하듯 떠올려볼 수 있는 자리지만, 작가마다 작은 작품 공간을 따로 배정한 군집 개인전 형식에만 머무른 한계도 뚜렷해 보인다. ‘경원대 스타일’이 미술계의 다양성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담론틀은 전시에서 거의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2월19일~4월3일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으로 옮겨간다. (02)736-102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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