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를 문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사진(오른쪽). 르네 뷔리가 1963년 1월 찍은 이 사진은 이후 전세계로 퍼지면서 체 게바라의 등록상표가 됐다. 하지만 필름들을 현상한 밀착인화지(왼쪽)를 보면, 이 컷 말고도 혁명가 특유의 매우 다양한 표정과 몸짓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매그넘 콘택트 시트’전
창틀 같은 액자에 한 장의 역사적인 사진이 붙어 있다. 1959년 7월 미국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 소련 수도 모스크바의 미국 박람회장을 방문해 눈감은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총리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1930~80년대 소속작가들 명작과
좋은 컷 추려내기 위해 사용한
촬영 당시 필름밀착인화지 선봬
20세기 세계사·사진사 한눈에 사진가 엘리엇 어윈이 찍은 이 장면은 이듬해 닉슨의 대통령 선거전 포스터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진실은 다르다. 이 컷이 포함된 필름 전체를 인화한 프린트를 보면 당시 둘은 설전이 아니라 매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게다가 닉슨 쪽은 어윈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 사진을 무단으로 포스터에 쓰면서 소련에 대해 할 말을 다 하는 투사의 이미지로 닉슨을 포장했다. 이처럼 한 장의 사진은 진실을 온전하게 전하지 않는다. 사진가가 찍은 오직 그 순간의 인상만을 기록할 뿐이고, 그 순간들은 오해되고 과장되기 일쑤다. 16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19~20층에서 개막한 세계적인 보도사진가 그룹 매그넘의 특별전 `매그넘 콘택트 시트’(4월16일까지)에서 관객들은 이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인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19층 전시장에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매그넘 소속 거장들의 눈에 선한 명작들과 더불어 이 명작들이 그 일부로 들어가 있는 촬영 당시의 필름밀착인화지가 선보이고 있다. 밀착인화지는 필름롤 전체를 통으로 인화, 현상한 사진모음이다. 아날로그 사진 시대 작가가 특정 시간 촬영한 전체 사진들을 보면서 좋은 컷들을 추려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사진가의 숨은 일기장 같은 유물들이다. 명작들을 촬영한 전후 여러 순간들을 담은 다른 무수한 컷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당시 현장의 내밀한 분위기, 상황들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거장들의 발가벗겨진 촬영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밀착인화지의 요지경은 흥미진진하다. 단연 눈에 감기는 작품이 1963년 쿠바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인터뷰할 당시 시가를 피워 문 모습을 포착한 르네 뷔리의 사진이다. 이후 체 게바라의 유명한 등록상표가 됐지만, 밀착인화지를 보면 시가를 빼어물기 전과 피우고 난 뒤의 소탈한 갖가지 모습들이 많아 여러 상상을 일으킨다. 시가를 물지 않은 모습이 선택됐다면 오늘날 이 혁명가의 이미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미장센이 된 로버트 카파의 저 유명한 1944년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 전투 사진도 감흥이 새롭다. 당시 목숨을 걸고 찍은 그의 필름은 건조기에서 감광액과 같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극히 일부만 살아남았다. 대부분 새카맣게 변한 밀착인화지에 그 흔적이 절절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증언하듯 보여준다. 16일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화제를 모은 체코 거장 요세프 코우델카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찍은 명작들은 당시 프라하를 침공한 소련군 탱크 행렬을 연속 포착한 밀착프린트를 통해 더욱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이와 달리 ‘결정적 순간’이란 화두로 유명한 매그넘 창시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등의 몇몇 작가들은 밀착인화지를 공개하지 않고 작품만 내걸어 작가마다 다른 취향도 드러난다. 이외에도 베르너 비쇼프, 스티브 매커리, 마르크 리부, 토마스 횝커 등의 동료, 후배거장과 2000년대 이후 소장작가들의 디지털 사진들까지 94점의 수작과 밀착인화지 70여점을 살펴보는 관람 여정은 20세기 세계사와 사진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음미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중견 사진가 강운구씨는 “밀착인화지 전시는 카르티에브레송이 말했듯 부엌에 초대해 요리용 냄비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역사적 순간들을 담은 거장들의 치열한 시선과 미묘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입장료 일반 6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418-131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좋은 컷 추려내기 위해 사용한
촬영 당시 필름밀착인화지 선봬
20세기 세계사·사진사 한눈에 사진가 엘리엇 어윈이 찍은 이 장면은 이듬해 닉슨의 대통령 선거전 포스터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진실은 다르다. 이 컷이 포함된 필름 전체를 인화한 프린트를 보면 당시 둘은 설전이 아니라 매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게다가 닉슨 쪽은 어윈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 사진을 무단으로 포스터에 쓰면서 소련에 대해 할 말을 다 하는 투사의 이미지로 닉슨을 포장했다. 이처럼 한 장의 사진은 진실을 온전하게 전하지 않는다. 사진가가 찍은 오직 그 순간의 인상만을 기록할 뿐이고, 그 순간들은 오해되고 과장되기 일쑤다. 16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19~20층에서 개막한 세계적인 보도사진가 그룹 매그넘의 특별전 `매그넘 콘택트 시트’(4월16일까지)에서 관객들은 이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인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19층 전시장에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매그넘 소속 거장들의 눈에 선한 명작들과 더불어 이 명작들이 그 일부로 들어가 있는 촬영 당시의 필름밀착인화지가 선보이고 있다. 밀착인화지는 필름롤 전체를 통으로 인화, 현상한 사진모음이다. 아날로그 사진 시대 작가가 특정 시간 촬영한 전체 사진들을 보면서 좋은 컷들을 추려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사진가의 숨은 일기장 같은 유물들이다. 명작들을 촬영한 전후 여러 순간들을 담은 다른 무수한 컷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당시 현장의 내밀한 분위기, 상황들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거장들의 발가벗겨진 촬영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밀착인화지의 요지경은 흥미진진하다. 단연 눈에 감기는 작품이 1963년 쿠바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인터뷰할 당시 시가를 피워 문 모습을 포착한 르네 뷔리의 사진이다. 이후 체 게바라의 유명한 등록상표가 됐지만, 밀착인화지를 보면 시가를 빼어물기 전과 피우고 난 뒤의 소탈한 갖가지 모습들이 많아 여러 상상을 일으킨다. 시가를 물지 않은 모습이 선택됐다면 오늘날 이 혁명가의 이미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미장센이 된 로버트 카파의 저 유명한 1944년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 전투 사진도 감흥이 새롭다. 당시 목숨을 걸고 찍은 그의 필름은 건조기에서 감광액과 같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극히 일부만 살아남았다. 대부분 새카맣게 변한 밀착인화지에 그 흔적이 절절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증언하듯 보여준다. 16일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화제를 모은 체코 거장 요세프 코우델카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찍은 명작들은 당시 프라하를 침공한 소련군 탱크 행렬을 연속 포착한 밀착프린트를 통해 더욱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이와 달리 ‘결정적 순간’이란 화두로 유명한 매그넘 창시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등의 몇몇 작가들은 밀착인화지를 공개하지 않고 작품만 내걸어 작가마다 다른 취향도 드러난다. 이외에도 베르너 비쇼프, 스티브 매커리, 마르크 리부, 토마스 횝커 등의 동료, 후배거장과 2000년대 이후 소장작가들의 디지털 사진들까지 94점의 수작과 밀착인화지 70여점을 살펴보는 관람 여정은 20세기 세계사와 사진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음미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중견 사진가 강운구씨는 “밀착인화지 전시는 카르티에브레송이 말했듯 부엌에 초대해 요리용 냄비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역사적 순간들을 담은 거장들의 치열한 시선과 미묘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입장료 일반 6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418-131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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