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참 재미있는 밴드 이름이 많다. 그중에서도 ‘만쥬 한 봉지’는 단연 귀에 걸리는 이름이다. 고소함과 달콤함을 버무린 과자 만쥬를 이름으로 쓴 만큼 그들의 음악이 어떤지는 짐작 가능하지 않나? 당신이 떠올린 바로 그 느낌이 맞다.
‘만쥬 한 봉지’는 기타를 비롯한 각종 악기를 맡는 리더 최용수와 보컬리스트 만쥬, 건반과 코러스를 담당하는 한준희.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종종 이들의 음악은 ‘어쿠스틱 뽕짝 소울’이라는 요상한 표현으로 설명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꽤나 어쿠스틱하고, 뽕짝처럼 귀에 착 감기고, 여성 보컬 만쥬의 음색은 다분히 소울풀하니 말이다. 직접 이들의 연주를 본 적이 있는데, 기교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흥으로 노래를 ‘불러 젖히는’ 만쥬의 모습은 요절한 소울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정말 꼭 닮았다. 다만, 퇴폐적인 느낌을 발랄함으로 치환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라고나 할까?
만쥬 한 봉지의 노래들을 관통하는 단어는 일상이다. 목숨을 건 사랑이나, 간절한 꿈, 거창한 철학 등등 우리 가요에 흔하게 등장하는 테마는 이들의 몫이 아니다. 이들은 그저 괜찮으면 나랑 술이나 한잔 하자고 권하고(술도 한잔) 나는 고작 너의 잠버릇과 카톡 상대가 궁금하다고 보채고(사생활이 궁금해) 도시락 싸서 피크닉을 가자고(너와 걸을래) 꼬드길 뿐이다. 이 중에서 나의 추천곡은 ‘술도 한잔’.
만쥬 한 봉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한 젊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기도 일산쯤의 아파트에 사는 그 청년은 명문대는 아니지만 다들 알 만한 대학의 인문계열을 졸업하고 1년째 구직활동 중이다. 몇 번 지지부진한 연애를 경험했지만 아직 연애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 종종 서울 홍대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술도 마신다. 큰 욕심은 없다. 먹고살 만한 급여를 주는 직장만 구해도 다행이다. 요즘 ‘썸’타고 있는 오빠랑 잘되면 금상첨화.
기성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을 보면 두 가지 중 한 가지 태도를 취하곤 한다.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야망이 사라졌다며 개탄하거나,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위로하거나. 만쥬 한 봉지는 어느 쪽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의 노랫말을 잠깐 인용해보자. 노래 제목은 ‘돈으로 주세요’.
‘동정 따윈 하지 말아주세요. 차라리 돈으로 주세요. 그 돈으로 밥이라도 사먹을래요. 영혼 없는 리액션은 됐어요. 차라리 돈으로 주세요.’
들었냐 꼰대들아? 건방지게 가르치려 들지 말고, 요상한 아포리즘으로 공감하는 척하지 말란 말이다. 특히나 걸핏하면 청년을 들먹이면서 위하는 척하다가도 자기 기득권은 손에 꼭 쥔 채 일자리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와 기업인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차라리 돈으로 주라고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일상을 정확히 관통하는 노랫말과 더불어, 이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꼭 이야기하고 싶다. 2013년 3월에 첫 미니음반을 발표한 이래 이들이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는 무려 30곡이 넘는다. 3년이 채 안 되었음을 고려하면 매달 한 곡씩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다는 말씀. 놀랍도록 성실하다. 직접 만난 자리에서 칭찬을 해줬더니 이러더라.
“뮤지션도 직업이기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 스스로 정한 룰이 있어야 하고 그에 맞춰 열심히 활동하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앞으로도 이들의 사랑스러운 ‘어쿠스틱 뽕짝 소울’을 듬뿍 즐길 수 있다니. 아직 내 손에는 한 봉지의 만쥬가 남아있소이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