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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인테리어 가게같은 청년작가들의 박람회

등록 2016-01-28 18:46수정 2016-01-29 18:45

신생공간 ‘기고자’의 전시 섹션에 나온 이정형 작가의 ‘페인터’. 사진 노형석 기자
신생공간 ‘기고자’의 전시 섹션에 나온 이정형 작가의 ‘페인터’. 사진 노형석 기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바벨’전
변두리 신생 작업공간 17팀
70여명 현재진행형 작업들 모아
“이번 역은 종각, 종각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각 역 안내방송이 플랫폼도, 철로도 없는 전시장 들머리를 울린다. 먹먹하게 퍼져가는 방송음과 입구 정면 스크린에 투사되는 전철 광고판 풍경들. 방송은 열차의 주행 방향을 잇따라 알리지만, 역의 실체는 여기에 없다. 이 공허한 분위기가 왠지 섬뜩한 기분을 자아내는 작가 최윤씨의 영상 사운드 작품 ‘진보’는 지금 청년미술의 강퍅한 현실에 대한 ‘지독한 은유’다. ‘성과나 의미 따지지 말고 무조건 앞으로 나가라, 비빌 데 있으면 틀고 앉으라’는 강박이다. 기존 미술판의 외면 속에 작업터전을 찾아 작가의 존재부터 부지하는 것이 우선 목표가 된 미술지형의 변화를 일러주는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서울 바벨’은 “뭐라도 해야하는”(작가 공석민) 20~30대 작가 17팀 70여명의 현재진행형 작업들을 여기저기 풀어놓았다. 주인공은 작가라기보다 지난해부터 서울 변두리 주택가 공단 등에 우후죽순 개설된 작업실+전시장 얼개의 청년작가 신생공간들과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수시로 이합집산하는 작업 플랫폼들이다. 과거 현실참여나 특정한 조형적 이상을 염두에 두고 작가들이 오랫동안 뭉쳤던 대안공간과 달리, 그들만의 장소에서 끼리끼리 작업하고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젊은 신생공간들의 대두는 지난해 한국 미술판의 특징적 현상이었다. 1990년대 대안적 작가공간 ‘쌈지’를 운영했던 김홍희 관장이 이런 현상을 미술관에 아트박람회 형식으로 끌어들여 갈무리해보자며 펼친 마당이 ‘서울 바벨’전이다. 교역소, 커먼센터 등의 대표적인 몇몇 신생공간들은 빠졌고,일부 기획자와 작가들은 촉박하게 기획된 미술관 전시에 ‘비공감’을 나타내며 불참해 전체적으로 아귀를 잘 맞춘 건 아니다.  

전시장은 참여한 신생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각각 주어진 섹션 공간에 생산한 작업과 영상, 퍼포먼스 등을 선보이는 군집전 얼개로 짜여졌다. 일반 관객이 감상하기엔 불편한 관람 동선이다. 그래도 죽 살피다보면, 청년 세대의 작업적 특징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작업 공간에 대한 절실한 바람이 감지되지만, 개별 작품들의 제작 방식이나 구성이 인테리어 숍처럼 정돈돼 있고 메시지도 그닥 거칠지 않다.

서울 창신동 청년 사진공간 ‘ 지금여기’의 섹션은 모든 작품들이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지난 한 해 수십여개의 신생공간들이 난립하면서 숱한 전시가 명멸한 속도전 미술에 대한 중압감을 비틀어 표현한 모습이다. 일상에서 작가로서 마주하는 난감함을 벽돌에 꽂힌 스틸 파이프로 표현한 박승혁 작가의 ‘받침대’나 작업과정에서 노동의 힘든 과정을 페인트통과 붓질통 등이 엉킨 설치작품으로 보여주는 이정형씨의 ‘페인터’는 그들만의 답답한 내면을 발산하는 작품들이다. 정홍식 작가는 진공청소기의 디자인에 알록달록한 추상적 색감을 입혀 디자인과는 다른 미술의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홍희 관장은 기존 시스템 등을 거부하는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라고 평가했지만, 실제 전시에서 청년 작가들의 정체성은 ‘영악하고 신중한 스타트업 아티스트’에 가깝다. 강성원 평론가는 “과거 거칠고 강렬했던 대안공간 작가들의 역동적 작업들과 달리 신중한 발언과 감각적인 인테리어풍 이미지들이 많아 애어른들 전시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4월5일까지. (02)2124-88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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