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본관 1층에 선보인 1990년 당시 백남준의 오구굿판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의 소품들. 당시 고인이 썼던 옷과 갓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백남준 10주기전 ‘백남준, 서울에서’
절로 어깨춤이 난다. 이 전시는 비디오거장 백남준(1932~2006)이 푹푹 고아 끓여낸 잡탕이다. 1980년대 그를 국내 화랑가에 처음 소개한 갤러리현대가 서울 사간동 본관, 분관에 차린 10주기전 ‘백남준, 서울에서’는 얼큰하고 흥겹다. 동서 고금의 온갖 선율과 문명의 소음, 첨단과 전통의 이미지들을 한 덩어리로 녹여낸 대표작들이 떠들썩하게 펼쳐진다. 거장 특유의 장난기와 전위성이 듬뿍 밴 작품들은 20세기 초 소변기를 작품으로 내놓은 풍운아 마르셀 뒤샹(1887~1968)의 후계자로 왜 백남준이 거명되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명품들이다.
80년대 비디오 로봇작업 등
대표작 40여점 한자리에
요제프 보이스 추모굿판 재현도
백남준은 1963년 독일 파르나스 화랑에서 바이올린을 콱 분질러버린 퍼포먼스에 이어 60~70년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의 관능적인 영상협연으로 세계미술판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전시는 60년대 백남준의 전위적 발자취를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과 더불어 80년대 비디오 로봇작업과 그의 사상, 철학을 집약한 대작 ‘파우스트’, 90년대 폐쇄회로 영상작업 등을 아우르는 작품 40여점을 널널한 공간에 부려놓았다. 세상의 사건과 온갖 현상들을 통째로 녹여 또다른 이미지의 화엄세상을 추구했던 고인의 작품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본관 1층에 입장하면, 1990년 백남준이 동료거장 요제프 보이스(1986년 타계)를 추모하며 화랑 뒷뜨락에서 벌인 진혼굿판 소품들을 만나게 된다. ‘늑대걸음으로’라고 이름붙였던 굿판에서 고인이 입었던 흰 두루마기와 갓은 현장을 촬용한 프랑스인 장폴 파르지에가 처음 공개한 유품이다. 보이스의 작품 브랜드였던 속빈 피아노와 윗부분 뚫린 중절모를 콘크리트로 뜬 모형 등도 제물과 제문 앞에 복원돼 당시 굿판 현장을 재현했다. 백남준이 보이스의 영혼을 부르면서 흙을 삽으로 뿌린 당시 주술 행위들의 영상도 벽면 스크린에 나온다.
2층에는 백남준의 생전 영상과 음악들을 구성해 만든 흥겨운 다큐영상이 흐르고, 다른 쪽 벽에는 최근 타계한 영국 팝가수 데이빗 보위의 모습을 담은 1994년 평면그림이 내걸렸다. 글램록 총아였던 보위의 실험정신을 그의 머리와 가슴 부분에 붙인 유리구슬과 영상을 통해 드러낸 색다른 작품이다. 분관에서는 초중기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와 첼로협연의 동료 샬롯 무어만을 추억하는 비디오 조형물과 무어만과의 실연 장면을 담은 사진 모음들이 공간과 벽을 채웠다.
‘전자골동품’ 예술로 1986년 첫선을 보였던 할아버지, 할머니 로봇 시리즈와 1966년 재미물리학자 진영선 박사의 타계 때 두루마리 종이에 쓴 추모곡, 13점 대형 비디오 조각에 인류의 12가지 화두를 집어넣은 대작 ‘나의 파우스트 : 예술’ 등도 눈길을 붙잡는다. 이 대표작들의 갖가지 영상들 곁으로 재즈, 맘보, 록, 클래식 등의 음악과 소음, 인터뷰 음성이 마구 뒤섞여 쏟아지면서, 백남준의 비빔밥 예술이 더욱 생생한 실체로 와닿는다. 특히 분관 1층의 ‘글로벌 그루브’ 영상은 울림이 크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월광’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전통 부채춤 무희의 모습이 미국 뉴욕의 마천루,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녹아들어간다. 이 영상들이 흐물거리며 사라질 즈음 고인의 육성이 귀를 때린다. “오픈 유어 아이즈(당신 눈을 열어)!” 4월3일까지. (02)2287-35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대표작 40여점 한자리에
요제프 보이스 추모굿판 재현도
1990년 현대화랑 뒷뜰에서 보이스 진혼굿판을 벌이고 있는 백남준의 모습이다.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백남준의 1994년작 ‘데이빗 보위’. 화폭에 담긴 팝가수 데이빗 보위의 머리와 가슴에 유리구슬 설치물과 비디오영상을 부착해 그의 실험정신을 색다르게 표상했다.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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