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익숙함’전에 나온 원로사진가 김복만씨의 ‘송정 기차역’. 1960년대 부산의 피서 열차에 잔뜩 매달린 사람들을 담은 색다른 구도의 작품이다. 도판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사진 속에서 허연 연기를 피우며 ‘미카3형’ 증기기관차가 달린다. 이 철마의 코앞과 옆구리에 사람들이 잔뜩 달라붙었다. 선글라스 낀 아저씨, 청소년, 아이들이 ‘위험천만하게’ 열차에 매달려 주변 풍경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혹시 피난열차?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이 웃으며 짚어준다. “1961년 피서열차예요. 60년대 부산 해운대와 송정 해수욕장 사이의 피서객들을 수송했죠.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가는 열차에 매달려 경치를 보는 게 그때 풍속도였대요.”
낯설기만 한 50년전 피서열차를 찍었던 이는 원로사진가 김복만(80)씨. 80년대까지 다큐사진 대가 최민식과 더불어 부산 사진의 자존심을 지켰던 그의 50~60년대 부산 풍경들이 지금 해운대 들머리의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 내걸려있다. 김씨의 개인전 ‘낯선 익숙함’(3월27일까지)은 서민들 생활 풍경에 앵글을 맞춘 구작들로 채워졌다. ‘마음으로 찍는다’는 지론을 강조했던 김 사진가는 민중 군상의 다기한 풍모에 집중했던 최민식과 달리 그 시절 부산 도시공간의 이면에 관심을 쏟았다. 번화가 서면 전차 종점의 50년대 러시아워 인파와 나무판을 철판에 얼기설기 붙인 옛 전차, 케이블카 오르내리던 송도, 귀로의 촌로들, 자갈치 시장에 아이들을 데리고나온 생선장수 아낙 등이 눈아귀에 들어온다. 김복만 사진전은 미술관이 연초 펼쳐놓은 전시잔치의 일부다.
지난해 거장 이우환 작가의 개인미술관 ‘이우환 공간’을 경내에 개관했던 이 미술관은 요즘 서울 못지않게 다채로운 명품 전시들로 손짓한다.
2층의 ‘스테이징 필름’전(4월17일까지)은 무위의 사상을 표방한 이우환 공간의 점·선 그림들과 맥락이 닿는 국내외 실력파 작가들의 비디오아트를 선보이는 극장식 전시다. 검은 베일 덮어쓴 무슬림 여성 군상들의 까마귀 떼 같은 영상으로 이슬람권의 여성 억압을 은유한 이란 출신 거장 쉬린 네샤트의 ‘황홀’을 비롯해 빌 비올라, 전준호·문경원, 폴 파이퍼 등이 내놓은 단채널, 다채널 영상들은 영화와의 경계 지점에서 접점과 차이짓기를 모색하는 비디오아트의 현주소를 드러내보여준다. 팝아트 대가 앤디 워홀의 컬렉션들을 3층에 가득 풀어놓은 ‘앤디 워홀 라이브’ 전(3월20일까지)은 서울 관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입소문이 났다. 미국 피츠버그 앤디워홀 미술관의 컬렉션순회전으로, 마릴린 먼로, 마오쩌둥 등 유명인들의 실크스크린 초상들을 비롯해 초창기 패션 드로잉,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의 다큐 필름, 워홀표 성인영화, 잡동사니 수집품 등이 망라돼 이 까불이 예술가의 모든 것을 섭렵할 수 있다.
맞은 편 전시실에는 50~70년대 부산 화단을 움직인 ‘토벽(土壁)’ 동인들을 조명한 ‘부산 토박이, 토벽동인의 재발견’ 전(4월24일)이 기다린다. 50년대 임시수도 시기 피난온 화단 대가들과 교유했고, 그뒤 서구 양화를 지역 풍토에 맞게 토착화하려 애썼던 동인 6명의 그림들이 나왔다. 야수파 스타일을 방불케하는 원초적 색감으로 그린 김종식 작가의 ‘부산항 겨울’이나 김경 작가의 드로잉 ‘칼치’ 등은 대가들 못지않은 수준급의 필치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부산/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