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2010)
주재환 개인전 ‘어둠 속의 변신’
80년대 민중미술의 ‘큰형님’으로
피곤한 현실 재기넘치게 꼬집어
80년대 민중미술의 ‘큰형님’으로
피곤한 현실 재기넘치게 꼬집어
그는 진정한 ‘별종’이다. 미술인생 40년을 ‘조무래기 미학’으로 내달려온 원로작가 주재환(76)씨는 1980년대 이후 우리 미술사에서 누구도 쉽게 흉내내거나 틀 잡기 힘든 작업 궤적을 그려왔다. 80년대 참여미술모임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었고,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을 지낸 민중미술 진영의 ‘큰형님’으로 통했지만, 작품들은 여느 민중미술가들의 격렬하고 날선 도상들과는 크게 달랐다. 그는 잡동사니 같은 문방구, 생활용품, 폐품 등을 뭉치고 붙이고 매단 ‘생활미술’품들을 꾸준히 만들었고, 기존 거장들의 작품을 허접하게 패러디하거나, 푸른 화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 괴물 같은 기묘한 군상, 사물이 나타나는 그림들을 그렸다. 추상거장 몬드리안의 색면분할 그림을 패러디해 러브호텔 방의 모습으로 뒤튼 대표작 ‘몬드리안 호텔’(1980)은 온통 단색조 모더니즘 그림으로 뒤덮인 당대 주류 화단의 맹목성에 대한 통렬한 냉소였다.
잡풀 자라듯 작업해온 작가의 구작, 근작들을 그러모은 개인전 ‘어둠 속의 변신’이 서울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다. 그림과 설치, 매체작품 등 지난 30여년간의 작품 50여점을 컬렉터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리려고 꾸린 자리다. “한국에서 푸른색을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평론가 성완경씨 말처럼, 가장 돋보이는 작업들은 90년대 이후 열중해온 푸른 그림들이다. 특유의 몽상가적 면모가 드러나는 푸른색, 보라색의 깊고 심오한 색조가 돋보이고, 그 배경 아래 기괴한 빛살이며, 덩어리, 사람 같은 형상들이 피어오른다. 이 독특한 도상들은 작가의 삶과 함께했던 음울한 현실들을, 절실하면서도 꿈꾸는 듯한 분위기로 전해준다.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다이아몬드해골’ 사진과 브라질 빈민가 ‘돌밥 냄비’의 사진을 겹치게 붙인 근작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2010) 같은 콜라주 매체작업들 또한 세계화 시대의 피곤한 생활 현실을 재기 넘치게 꼬집으면서, 인간의 온기 또한 물씬하게 담고 있다. 젊은 시절 행상, 외판원 등 온갖 잡일을 하며 ‘세상 바닥’에 대한 실감을 키운 작가는 “예술보다 사람 먹고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한다”고 말한다. 4월6일까지. (02)720-152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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