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틴. 사진 연합뉴스
비틀스 음반 대부분을 담당해 ‘다섯번째 비틀스 멤버’라고 불린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별세했다. 향년 90.
마틴의 소속사인 시에이(CA)매니지먼트는 9일(현지시각) “조지 마틴 경이 어젯밤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틴은 무명 밴드였던 비틀스를 발굴하고 비틀스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친 프로듀서였다. 마틴은 이엠아이(EMI)의 음반 레이블 중 하나였던 팔로폰을 이끌던 시절인 1962년 데모테이프를 듣고 비틀스를 발탁했다. 첫 음반 <플리즈 플리즈 미>(1963)부터 해체 직전 나온 <애비 로드>(1969)까지 대부분의 비틀스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그는 비틀스의 첫 싱글로 <러브 미 두>(1962)를 택했으며, 기존 드러머 대신 링고 스타를 영입하도록 독려했다.
마틴은 길드홀 음악연극학교를 졸업했으며 오보에 연주자로 활동한 적도 있을 만큼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이런 이력이 비틀스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비틀스 멤버 모두 악보를 잘 읽지 못해서 허밍으로 멜로디를 들려주면, 마틴이 이를 악보에 적곤 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비틀스의 대표곡 ‘예스터데이’의 현악 부문은 마틴의 아이디어였고, ‘인 마이 라이프’의 피아노 연주는 그가 직접 했다. <비비시>(BBC)는 마틴이 프로듀싱하지 않았다면 비틀스 음악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틴은 엘턴 존, 셀린 디옹, 엘라 피츠제럴드 등 여러 음악인과 함께 일했다. 엘턴 존이 97년 ‘캔들 인 더 윈드’를 녹음했을 때 참여했으며, <007> 영화음악 제작도 했다. 98년 제작한 앨범 <인 마이 라이프>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96년 작위를 받았고, 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비공연자 부문에 올랐다.
링고 스타는 트위터에 “그가 그리울 것이다”라고 애도의 글을 남겼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마틴이 “음악계의 거장이었다”고 애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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