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2층에 놓인 진시우 작가의 설치작품 ‘표현기법3-균형 연구’. 독초 심은 화분 2개를 달아맨 나무 각목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휘어진 합판을 관통하는 모양새다. 약초로도 쓰이는 독초처럼 이 시대 예술의 역기능, 순기능의 균형과 그 경계에 얽힌 작가 나름의 고민을 표상한 작품이다.
아르코미술관 특별전 ‘관계적 시간’
네덜란드 레익스 아카데미 초대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작가 7명
이국 예술가와의 교류 느낀점 풀어
네덜란드 레익스 아카데미 초대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작가 7명
이국 예술가와의 교류 느낀점 풀어
느낌이 야릇하다. 작품들 자체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데, 눈이 그닥 피곤하지 않다. 옛 영화 같은 흑백톤 영상이나 탁탁 소리나는 슬라이드 필름, 공사장 합판 표면 같은 그림, 각목과 합판으로 얼기설기 엮은 깡마른 조형물들이 전시장을 잇따라 채운다. 요즘 현대미술전에서 활개치는 현란한 디지털 영상들, 복잡하고 요란한 설치물 덩어리들이 없다는 게 오히려 편안한 위안처럼 와닿는다고나 할까.
이 작품마당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1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1, 2층에서 ‘관계적 시간’이란 제목 아래 차린 청년작가 특별전이다. 10년전부터 예술위 지원으로 네덜란드 작가 육성지원 기관인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의 초대 작가 거주(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한국작가 7명이 주인공이다. 과거 이 레지던시에서 외국예술가들과 만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풀어낸 자리다.
우리 미술판에서 레지던시 보고전은 빤한 통과의례식 전시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이 전시는 그런 허식을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점이 신선하다. 전시구성보다 참여작가 7명이 영상, 그림, 조형물로 보여주는 예민한 감각과 생각의 덩어리들을 주목하게 된다.
영상물이 많지만, 단연 시선을 붙잡는 건 2층에 내걸린 안지산 작가의 그림들이다. 2014년 라익스에서 작업한 그는 동료로 지낸 현지 행위예술가의 회의적인 생각과 태도, 몸짓, 감성들을 전혀 다른 자신의 회화 공간에 끌어와 재해석한다. 너덜너덜한 페인트 자국 같지만 힘이 약동하는 붓질과 섬세한 색조가 배치된 닫힌 방 같은 공간이 화폭이 된다. 그 안에서 자신이 모델이 되어 그 안에서 엎드리거나 손을 움직이는 등의 여러 몸짓을 묘사하거나 벽면의 질감을 강조한다. 풍경과 정물의 사생 대신 색과 조형적 요소들이 한 화면 속에서 어우러지면서 이국 예술가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중견작가 안창홍씨의 아들인 그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부친의 집요한 시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아트선재 전시로 호평받은 김성환 작가는 10년전 라익스에서 함께 거주했던 현지 여성작가의 먹고 말하고 배설하는 일상을 두루 관찰하고 훑은 다큐영상작업을 내놓았다. 타자와의 관계성이 어떻게 바뀌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진시우 작가는 쥐를 새긴 의자의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일상적 사건이나 예술의 균형이란 화두 앞에서 머리 속에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단상과 이야기들을 난해한 설치물로 빚어내 보여준다.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만 짜깁기해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역전시키려 한 임고은 작가의 실험적 영상들도 이채롭다. 참여작가들이 한결같이 미술판의 제도와 유행이 강제하는 가식을 걷고 절실하게 고민해온 화두를 집약해 보여주려는 의도를 드러낸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하고싶은 취향대로 작업여건을 제공하고 대가급 기획자, 작가들과의 만남까지 주선해온 라익스아카데미의 자유분방한 시스템이 낳은 성취로도 비친다. 6월19일까지. (02)760-4625.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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