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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색채가 뿜어내는 작가의 시선

등록 2016-04-12 19:17수정 2016-04-12 20:49

최진욱 작가가 2013년 그린 대작 ‘서서히’. 부박한 한국의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동묘지의 하관식 풍경이다. 세부의 비현실적인 화면구성과 강렬한 색채감은 그림 자체의 회화성에 대한 탐구의 흔적으로도 비친다.  도판 인디프레스 제공
최진욱 작가가 2013년 그린 대작 ‘서서히’. 부박한 한국의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동묘지의 하관식 풍경이다. 세부의 비현실적인 화면구성과 강렬한 색채감은 그림 자체의 회화성에 대한 탐구의 흔적으로도 비친다. 도판 인디프레스 제공
최진욱 작가, 21일까지 개인전
아현동 골목길·한강공원 묘사 등
20여년간 풍경에 자기 시선 담아
그림에서 리얼리즘이란 세상의 풍경과 사물들을 실제처럼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이래 많은 화가들은 더 나아가 액자를 포함한 그림 자체가 사실이 되는 것, 즉 그림 스스로 세상의 사물이 되는 것에 집착해왔다. 붓질과 색채로 아롱진 화면의 존재감을 살리는 것이 새 목표가 되었다. 흔히 추상미술로 오해하곤 하는 모더니즘은 그림 자체의 이런 작동 원리를 중시하는 사조다.

20여년간 진부한 일상 풍경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인식하고 그려온 작가 최진욱씨는 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안간힘을 쓰며 한 화면에 그러 모으려 한다. ‘색으로 감각이 튀어나오게 하는’ ‘화면에 볼을 대는 느낌’을 그리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서울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에 있는 전시공간 인디프레스의 개인전 근작들에서 이런 작가의 고민들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전시의 대표작은 길이 5m 넘는 큰 화폭에 그린 장례식 풍경인 ‘서서히’란 대작이다. 공동묘지에서 치른 친구 부친의 장례식을 사실적으로 그린 2008년 작에 검남색, 청록색, 노란색 등 비현실적 색감을 넣어 다시 그렸다. 작품에는 선뜩한 색채감과 더불어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노란빛 관을 안치하는 전통 의식과 지켜보는 양복차림 하객들의 술렁거리는 뒤태, 무덤을 들이느라 깎여버린 언덕과 오른쪽 화면의 울긋불긋한 숲, 숲 속 용달차와 술을 마시는 인부들의 모습이 조금씩 어그러진 채 맞붙은 화면을 통해 나타난다. 묘지 아래 쪽에는 삼단으로 조성된 일본식 축대들이 추상표현주의적인 붓질로 뭉그러진채 묘사된다. 모든 것이 조화롭지 않고 어수선하게 뒤섞인 이 장례 풍경은 전통과 현대가 혼돈을 빚으며 성찰없이 굴러온 한국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집약시킨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19세기 쿠르베의 대작 ‘오르낭의 매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화가 본연의 감각과 그가 고민해온 사회적 비판의식 등이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해온 자취라고 할 수 있다. 아현동 골목길 여학생들의 뒷모습과 밤거리 등을 묘사한 연작과 한강공원 등 풍경 연작에서는 부박한 생활공간들의 촉감과 젊은이들의 미묘한 에너지 등이 느껴진다.

제부도나 벚꽃길 등의 과거 삭막한 풍경그림에는 보이지 않던 노란색, 보라색 등을 활달한 붓질 속에 풀어 쓴 것도 근작들의 도드라진 특징이다. 색조, 틀거지에 대한 일탈의 충동, 수시로 끓어오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온한 상념들을 색조의 발산을 통해 두루 꿰려는 욕망의 발현이란 점에서 리얼리즘의 검투사 같은 풍모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리는 감각과 부박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사이에서 작가는 이제 제대로 그릴 자리를 잡은 걸까. 동료작가 김용익씨는 “그린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 지금 미술판에서 사실과 재현 사이를 오가며 계속 처절하게 고투해온 점을 높이 사고싶다”고 했다. 21일까지. (02)451-305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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