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관 네트워크 운동이 15일 전남 구례에서 시작됐다. ‘극장을 찾아서’ 개막식 모습과 여기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사진 ‘극장을찾아서’ 기획추진단 제공
영화인들이 모여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영화를 꾸준히 상영하는 극장들을 하나로 엮는 운동을 시작했다. 15일부터 18일까지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구례자연드림파크 안에 있는 구례자연드림시네마에 모인 영화인과 아이쿱생협 조합원 250명은 2018년까지 새로운 극장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제안에 합의하고 전국 300~350개 작은 극장을 하나로 엮는 ‘극장을 찾아서’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극장을 찾아서’는 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영화관 시대, 스크린 독과점 폐단을 개선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자구책을 마련하자는 정지영 감독의 제안에 공정영화협동조합인 ‘모두를 위한 극장’과 생활협동조합 아이쿱생협 등이 공감하면서 이루어졌다.
‘극장을 찾아서’에서 연 포럼에선 스크린독과점을 바로잡기 위한 입법 운동과 함께 새로운 극장망을 만들자는 토론과 제안이 활발했다. 왼쪽부터 포럼을 진행하는 김혜준 모두를위한극장 이사, 오동진 영화평론가, 정지영 감독. 사진 ‘극장을찾아서’ 기획추진단 제공
‘극장을 찾아서’가 13개 작품 상영전과 함께 연 포럼 ‘스크린독과점 해소를 위한 만민공동회’에선 대형 영화가 스크린을 독식하며 좋은 영화를 고사시키는 현실에 대한 영화인들의 성토가 높았다. 2월 개봉한 <검사외전>은 최대 1807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면서 전체상영관 수 78%를 차지했고, 3월 24일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1600개가 넘는 스크린을 독식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200만명을 조금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면서 상반기 극장가 불황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사이 상영기회를 잃은 한국의 독립영화와 <산하고인>(1400명), <크로닉>(개봉중, 3000명) 등 세계가 주목한 예술영화들은 한국 극장가에서 참담한 성적을 내왔다.
‘만민공동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혜준 모두를위한극장 이사장은 “멀티플렉스가 전체 상영관의 97.5%를 차지하고 상위 20편 영화가 57.5%의 관객을 가져가는 기형적인 현실에서 특정 영화를 대상으로 한 스크린 몰아주기 문제는 사회환경 조건 개선과 새로운 상영 플랫폼 없이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중인 문화공간 100여곳과 구례자연드림 시네마처럼 시민이 조성한 영화관들 그리고 비상설적인 상영공간등을 합치면 300곳이 훨씬 넘는 대안상영공간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서울 50곳, 부산 20곳 등 주요 광역시 대안 상영공간들을 거점으로 방사형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이 새로운 영화네트워크 운동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례 자연드림 시네마는 아이쿱 생협이 인구 2만7000명의 작은 도시 구례에 유기농 생산단지를 만들면서 지역 문화운동의 거점으로 조성한 극장이다. 이러한 대안공간들은 이미 여럿 존재해왔지만 영화계에선 그동안 멀티플렉스에만 매달려 작은 상영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또 포럼에 참여한 이영재 감독은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영화 <여름이 준 선물>은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들어진지 10년이 다 되도록 관객과 만나고 있지 못하다”며 “‘극장을찾아서’가 상영관뿐 아니라 대안 제작과 배급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극장을 찾아서’는 지역 시민들이 스스로 영화를 택하고 상영을 조직하는 일본의 ‘자주상영’ 활동에서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2000년 초반 일본에선 멀티 플렉스 상영관이 급속하게 늘면서 지역 작은 극장들이 존폐 위기를 맞자 지역 주민위원회와 독립영화단체가 상설상영관을 운영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는데 배급과 프로그램을 맡은 커뮤니티 시네마와 지역 곳곳에 파고 든 자주 상영 활동이 결합하면서 상영관 지키기뿐 아니라 작은 영화들의 제작·배급을 지원하는 풀뿌리 영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한 ‘시골극장’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한국판 자주상영이 시작될 수 있을까? 김혜준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2000년 초반 전국 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대안 상영 네트워크 운동이 시작됐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적 지원이 수반되지 않으면서 중단된 상태”라면서 “그때보다 한국영화 산업이 커졌고 24만명 조합원을 가진 아이쿱생활협동 조합과 공동 추진하면서 현실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계획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극장을 찾아서’는 5월2일 전주국제 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의 의견을 모으는 2차 만민공동회를 열고 가을엔 부산대 8개대학과 공동으로 2회 상영회를 열면서 지역과 본격 연계하는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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