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세월호의 모습을 형상화한 권용주 작가의 대형 구조물. 이 구조물 한켠에 팽목항의 처연한 풍경을 담은 서용선 작가의 소품 그림들이 내걸려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안산 경기도미술관 세월호 추모전
작가 22명이 상징·은유 작품 선봬
작가 22명이 상징·은유 작품 선봬
끝내 기억해주는 산자들에게 화답하려는 걸까.
지금 안산 경기도미술관 앞 ‘텔레토비’ 언덕은 민들레 꽃들 천지다. 개망초가 무성했던 곳인데, 올핸 유난히 민들레가 많다고 한다. 갸날파도 굽히지 않고 꽃대궁을 쑥쑥 세워올리는 결기가 대단하다. 이 민들레 언덕 아래 자리한 곳이 정부합동분향소. 2년 전 진도 앞 바다 속으로 사라진 미술관 옆 단원고생들의 생명과 활력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광경들을 지나쳐 미술관으로 걸어들어가면, 세월호 2주기를 맞아 16일 개막한 추념전시 ‘4월의 동행’을 보게된다. 서용선, 안규철, 조숙진, 최정화, 강홍구, 노순택, 김상돈, 장민승, 전진경, 이윤엽씨 등 장르, 세대를 넘어선 중견 소장 신작 작가 22명이 참가한 전시다. 이들은 대개 직설적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상징 혹은 은유, 비유, 풍자를 하면서 나름의 시선과 어법으로 참사를 갈무리한 작품들을 크고 작은 방들 속에 펼쳐놓았다. 사실 아퀴를 미리 짓는다면, 이 전시는 기획이 별 구실을 하지 못한다. 주제가 강렬한 까닭이 크지만, 다른 전시장에서 이미 선보인 세월호 구작들이 월등히 많다. 희생자 304명에게 각자의 소우주가 있었듯, 작품들 또한 세월호에 대해 작가가 각자 생각하는 상상계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앙 전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15m, 높이 4.2m의 푸르딩딩한 구조물을 눈여겨보게 된다. 사선형으로 기울어진 이 설치물은 가라앉기 직전 세월호의 밑동 부분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를 만든 권용주 작가는 전시장 말미의 아카이브 공간도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된 선체의 변형 부분 이미지를 따서 만들어냈다.
들머리 나무집 안에서는 봉선화 물을 바르고 기도하는 젊고 늙고 어린 손들의 맞잡은 사진 304개를 내걸었다. 조소희 작가의 ‘봉선화 기도 304’란 설치공간이다. 그의 사진들 속에서는 망자 앞에 가닿기를 청하는 산자들의 염원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벌건 손가락들의 웅변으로 보여준다. 서용선 작가는 권용주 작가의 침몰하는 선체 구조물 옆구리에 희생자의 주검을 기다리는 팽목항의 잔혹한 분위기를 푸른빛의 하늘과 허연 천막들의 대비로 핍진하게 보여준다. 다른 서해바다 풍경이지만,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물결을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장민승씨의 영상이나 전혀 소통이 안되는 김상돈씨의 공허한 구조물들은 권태롭고 두려운 부재의 악몽을 부추킨다. 숨진 단원고 학생들의 공부방을 찍은 세월호기록프로젝트의 사진작업들과 박재동 만화가가 <한겨레>에 연재한 학생초상화들이 전시 후반부의 마지막 시선을 숙연하게 만든다.
눈에 걸리는 건 생활미술, 키치미술을 해온 최정화 작가의 헛도는 작품들이다. 현관에는 풍선로봇이 바람이 들어갔다가 빠지면서 일어났다 자빠졌다를 되풀이하고 있다. 구작 ‘갑갑함에 대하여’인데, 304명의 영혼을 추념하는 전시와 성격이 걸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검게 칠했다지만, 한국의 부실한 압축성장, 근대성을 풍자하는 문제작으로 십여년전부터 선보였던 작품이다. 의미를 세월호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전시에 얽힌 죽음과 삶의 의미를 감안하면 접근방식이 가볍고 안일하고 태만하다는 눈총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다. 십년 이상 국내외 공원과 대중공간에서 펌프로 숨쉬어온 장식 연꽃 조형물을 검은색만 입혀 추모작이라며 분향소와 미술관 사이에 놓은 것도 볼품 사납다. 304명의 우주가 날아간 사건이라면, 작가는 그 무게 걸맞는 신작이나 개념을 갖고와야하지 않았을까. 6월26일까지. (031)481-7005.
안산/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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