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진전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진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 전시장. 사진 노형석 기자
국내 사진전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진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 전시장. 사진 노형석 기자
‘만드는’ 사진과 ‘그대로 찍는’ 사진 사이에서 한국현대사진의 30여년 뒤안길을 일궈온 주요 작품들이 도열했다.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민병헌, 김아타, 노순택, 김수자, 김아타 등 유명작가들의 대작과 젊은 작가들의 튀는 사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설치작업, 출판물, 라이선스 패션지 등에 실린 상업사진가들 사진까지 나왔다. 작품의 명성과 규모의 스펙터클을 내세운 전시장은 대가들 사진이 후배들 사진들을 거느리고 들어선 잔치판 같다. 이 작품들 행렬 속에서 기획자는 무슨 화두를 꺼내려는 걸까.
4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 한국현대사진 특별전은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이란 긴 제목을 달았다. 국내 역대 사진전 사상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거창한 덩치와 걸맞지않게 말하려는 이야기와 시각이 잘 보이지 않는다. 4개 전시실의 600평 넘는 면적에 53명의 작가가 200점 넘는 작품들을 내걸었지만, 한참 전시를 보고나서도 뚜렷한 초점, 이슈가 떠오르지 않고, 기획자의 관점도 종잡기 어렵다. 기획자인 이지윤 서울관 운영부장은 해외여행자유화와 서울올림픽 직후인 89년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에 가까와진 한국 현대사진의 역사적 변모를 총체적으로 다룬 전시라고 했다. 그러나 4부로 짠 전시장을 돌아보면, 89년이란 시점의 의미보다 기획자와 친분이 있거나, 그의 취향에 맞춤하거나 혹은 사진판에서 발언권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부각시킨 미니개인전 수십여개의 모음전이란 인상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현대사진의 기점을 대체로 80년대 중후반으로 짚고있다. 서구에서 유학한 구본창 등의 유학파들이 귀국하고 사진전문 전시장과 관련 기획전들이 쏟아지면서 미술장르 일부로 사진이 진입하는 지형변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50년대 이래 사회적 실상을 담아온 다큐 리얼리즘 사진의 전통을 넘어 개인의 심상과 표현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사진이 태동한 배경을 짚어주는 것이 전시를 푸는 단서일 것이다. 그런데, 1부 ‘실험의 시작’부터 이런 전제는 어그러진다. ‘검은 사진’으로 불리는 주명덕 작가의 ‘잃어버린 풍경’, 몸을 흑백톤으로 찍은 사진들을 실로 꿰매어만든 구본창의 ‘메이킹 포토’, 민병헌 작가의 희미한 풍경 사물 연작, 한지 위에 인화한 이정진의 사진, 사진 위에 색칠하거나 연필자국을 남긴 김대수의 작업 같은 80~90년대 작품들은 각기 영지처럼 구획을 나눠 차지하며 따로따로 빛나고 있을 뿐이다. 작품들 사이의 역사적 맥락이 거의 단절된 군집개인전식 구성은 2~4부에서도 되풀이된다. 오형근, 김옥선 작가 등의 유형적인 군상 사진들과 박불똥, 신학철의 사회비판적인 짜깁기 콜라주 사진(2부 개념사진), 김아타 조습 등의 퍼포먼스 연출작업과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 (3부 현대미술 맥락의 사진들), 한성필의 변형된 가림막 벽화 사진, 고명근의 필름사진 조형물(4부 이미지 너머의 풍경들) 등 다기한 양상의 작업들이 제시되지만, 소주제별로 분류했다는 것 외엔 작품들을 꿰는 기획의 힘을 엿보기 어렵다. 게다가 전시 말미는 역사적 관점으로 접근했는지 의심스러운 패션사진가들의 특별전이 돌출적으로 들어와 있기도 하다.
전시 내용과 동선이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귀결이다. 페미니스트 박영숙 작가와 다큐사진가 노순택의 여러 작업들은 사회적 발언의 함의가 묻힌 채 2부, 3부에 어색하게 걸쳐있고, 구본창 작가의 작품은 1부의 바느질한 사진과 별개로 말미의 패션사진전에 전통탈과 패션모델이 등장하는 이질적인 사진이 등장하기도 한다. 2부 영역에 98년부터 2000년대초반까지 나온 진보적 미술담론지 <포럼에이> 간행물 수십여장을 별다른 설명 없이 박찬경씨의 단독작품처럼 붙여 전시한 것도 관객의 오독을 부를 여지가 있다. 심지어 국내 제약사 총수의 부인이 찍은 개인 취향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90년대 이후 새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1부에 내걸려 눈길을 더욱 혼돈스럽게 만든다.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출품작이나 참여작가가 재단되는 것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관건은 이런 자기 취향과 선택의 타당성을 기획자가 전시에서 얼마나 설득력있게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전시가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과 융합되고 수렴되어온 현대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사적 성격이라면 관점에 대한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주요 작품들은 물론 사진사의 각종 아카이브 자료들에 대한 오랜 연구와 분석이 필수적이고, 선택한 작가와 작품들이 사진과 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작품 구성과 설명 등을 통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제 전시장에서는 이런 역사전시의 필수적 요소들이 대부분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아주 공적인…’전은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프랑스 철학자거장 롤랑 바르트의 사진미학을 주제로 열고있는 ‘보이지 않는 가족’ 전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인다. 프랑스의 20세기 거장 컬렉션을 직수입한 이 전시는 난해하지만, 보고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는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있다. 개인의 경험, 기억이 감상의 잣대를 좌지우지하는 바르트의 극히 주관적인 사진미학이 거장들 작품에서 어떻게 투영될 수 있는지 논쟁적 해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바르트 전시에 견줘 서울관 사진전은 무엇을 생각 거리로 제시하고 있을까. 담론다운 것은 별로 없다. 지금 사진판에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인 사회 현장의 다큐사진과 미술판 사진의 균열과 대립은 전시의 논점에서 아예 빠졌다. 대신 한국 미술·사진판의 알량한 권력, 인맥의 지형도가 희미하게 엿보일 뿐이다.
전시준비는 개막을 4달여 앞둔 올해초 시작됐다고 한다. 급조된 전시에 대한 학예실의 반대가 적지않았다는 뒷말이 나온다. 창설 이래 사진전 횟수가 10여차례에 그쳤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모처럼 벌인 한국사진사 전시가 개막 직후부터 부실 졸속 논란의 표적이 된 사실이 안타깝다. 한 중견사진가는 “우리 사진사를 내세우기엔 전시 얼개가 너무 허술하고 비전문가의 바닥난 역량이 보인다. 자괴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7월24일까지. (02)3701-95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