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을 두 번 열어도 배우를 다 못 구했다.(<모비딕> 초연) 연습기간은 일반 뮤지컬의 2배에다 연습 땐 모든 배우가 예외 없이 다 같이 모여야 했다.(<원스> 라이선스 공연) 배우가 악기 연주까지 맡아서 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 얘기다. 하지만 일단 무대에 불이 켜지면? 배우의 노래, 춤, 연기, 연주가 하나로 어우러지니 관객에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작품에 대한 몰입감도 높아진다. 적은 수나마 국내에서 계속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시도하는 이유일 테다. 27일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작 뮤지컬 <리틀잭>(연출 황두수)도 남여 주인공이 각각 기타와 피아노를 치며 연기한다.
■ 서구에선 이미 일반화 서구에서 ‘액터 뮤지션 뮤지컬’의 역사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최초의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1989년에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리턴 투 더 포비든 플래닛>을 꼽는다. 출연진은 7~8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음악적 실험’을 인정받아 <미스 사이공>을 누르고 그해 영국 최고 권위의 뮤지컬 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지난 4월21일부터 단 4일간 내한공연을 펼친 영국 니하이 씨어터의 <데드독>도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단출한 무대를 채우는 것은 바이올린, 일렉 기타, 드럼, 아코디언 등 총 18가지의 악기다. 18세기 음악부터 펑크, 힙합까지 ‘짬뽕’이 된 음악은 오롯이 10여명이 배우들이 완성했다. 공연의 백미는 극중 굿맨 부인(루시 리버스)이 “진실만이 광기를 멈출 수 있다”며 포효하는 결말부 장면. 감정이 격렬해질수록 그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의 활도 더욱 현란하게 움직였다.
■ 국내 창작 뮤지컬에서도 파이 커질까 국내 창작 뮤지컬 중에선 2011년 초연한 <모비딕>(연출 조용신)을 빼놓을 수 없다. 고래잡이를 떠난 배 위에서 피아노, 첼로, 더블베이스 등 클래식 악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조용신 연출은 “처음 창작에 뛰어들면서 뮤지컬이라는 양식을 새롭게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즉흥 연주 대결, 클라리넷으로 망원경을 표현하는 등의 창의적 발상으로 창작 뮤지컬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특히 주로 연주자를 캐스팅해 연기를 가르쳤던 초연땐 사람을 못 구해 악기를 바꾸기도 했다. 캐스팅 고민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2007년, 록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오디션>을 만든 박용전 연출은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풀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일단 연주가 가능한 배우에게도 ‘액터 뮤지컬 뮤지션’은 도전이다. 원종원 교수는 “배우들이 ‘슈퍼맨’이 돼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리틀잭>에서 남자 주인공 잭을 맡은 정민은 “처음엔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부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거기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섬세한 감정선까지 신경써야 하니 부담은 더 커졌다. 그래도 “음악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을 배우가 끌고 가는 매력”이 있어 욕심이 났단다. 9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들은 대사 리딩과 함께 기타와 피아노 합을 계속 맞춰보고 있었다. 황두수 연출은 “연주 연습이 곧 연기 연습이다. 드라마 속에서 연주가 진행되는 만큼 배우들 감성에 따라 연주도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내에서 더 많은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만날 수 있을까. 국내 뮤지컬 시장이 점점 더 크고 화려한 무대와 스타 캐스팅에 몰두하는 요즘, ‘액터 뮤지션 뮤지컬’은 생뚱맞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원종원 교수는 “국내선 아직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무대에 오르는 몇 작품들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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