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안무가’ 매슈 본(56)이 연출과 안무를 맡아 관심을 모은 댄스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미녀>. 대사도 없고, 정통 발레부터 난해할 것 같기만 한 현대무용까지 총출동한다니 걱정부터 앞섰다. 지루하거나 어렵지는 않을까. 괜한 우려였다. “단 한번도 발레 공연을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작품에 빠져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매슈 본의 말은 진짜였다. 곳곳에 뿌려놓은 ‘영국식 유머’는 비록 헛웃음일지라도 관객을 미소짓게 만든다.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파격적인 이야기는 막판에 관객의 가슴을 더욱 울리는 이유가 됐다. 뒹굴거나 끌려나가는 와중에도 차이콥스키 음악의 박자를 놓치지 않은 무용수들의 실력에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라 공주 역을 맡은 애슐리 쇼의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연인 ‘레오’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 채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동작을 할 때나 독장미에 찔린 뒤 잠에 빠져 공중을 떠다니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무대 뒤쪽에 두 줄의 무빙워크(자동길)를 설치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거나 2막 파티 장면에서 테니스 동작을 안무로 끌어들인 점은 매슈 본만이 선보일 수 있는 영리한 연출의 한 예다.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 그 자체다. 샤를 페로의 동화를 파격적으로 비틀었다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오히려 상식적인 이야기로 바뀐 느낌이다. 키스로 마녀의 저주를 풀어줬다는 이유 하나로 생면부지의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동화보다는 사랑하는 공주를 다시 만나기 위해 뱀파이어가 되어 100년을 기다린 ‘레오’의 사연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손짓 하나마저 더 애틋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신스틸러’ 갓난아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주의 어린 시절을 그린 1막 초반은 아기의 ‘원맨쇼’에 가까운데 인형임에도 마치 살아 있는 듯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커튼을 타고 올라가거나 하인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하는데 검은 타이즈를 입은 인형 조종사 여러 명이 합을 맞춰 동작을 만들어낸다. 요람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하는데 커튼 뒤에 한 명이 숨어서 인형을 움직인다고 한다. 1막 이후에도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전체적으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무용 공연으로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대사가 없다 보니 엄밀하게 이야기 줄기를 파악하거나 캐릭터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느껴졌다. 7월3일까지 서울 엘지아트센터.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