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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멍때리게 하는’ 소리를 보여드립니다

등록 2016-06-29 16:21수정 2016-06-29 20:08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전시실. 가벽도 없고 기둥들만 있는 휑하고 넓은 공간으로 다기한 소리들이 퍼져 나간다.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전시실. 가벽도 없고 기둥들만 있는 휑하고 넓은 공간으로 다기한 소리들이 퍼져 나간다.
김소라 작가의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전
“여기서 멍때리는 표정으로 평상에 누워 계시는 관객들이 많아요.”

전시장을 안내한 배명지 학예사의 말이 실감나게 들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전시실에 펼쳐진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김소라 프로젝트’전에는 덩어리가 있는 작품이 아무것도 없다. 400여평의 휑한 공간에 천장을 지탱하는 여러 기둥들과 전시장 둘레에 설치된 10개의 장대 같은 스피커, 길쭉한 평상들만 보일 뿐이다. 그 사이로 흐르는 건 에너지가 깃든 소리들이다. 가야금, 색소폰, 드럼, 피아노 등의 악기음이 흐느끼는 듯한 여인의 곡성에 섞여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얼핏 불협화음처럼 들리지만, 만져지듯 음률의 선이 뚜렷하고, 순수한 공명을 담은 소리들이다. 들을수록 생각이 풀리고 머릿속이 소거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전시를 벌인 김소라(51)씨는 지난 20여년간 인간과 존재, 세계의 이면을 색다른 감성으로 해석해온 작가다. 세상과 사물,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 그 사이의 인력에 대한 난해하고 다기한 메시지를 담은 비디오,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을 꾸려왔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비어 있는 상태’를 화두로 삼았다. 소리의 울림만으로 가득하되 실체는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존재를 성찰해보자는 뜻이다. 흥미로운 건 전시 제목이 곧 악보라는 점이다. 작가는 지난해 가을부터 국내 소리예술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작가의 의지를 접고 소리가 그저 몸을 관통해 울려나오는, 전시 제목 같은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했다. 가야금 대가 황병기씨를 비롯해 알프레트 하르트(색소폰), 계수정(피아노), 박민희(정가), 방준석(전자기타), 손경호(드럼), 최태현(전자음악)씨 등 쟁쟁한 실력파 음악인들이 의기투합해 연주를 녹음했다. 영화 <곡성>의 음악을 맡았던 장영규 감독은 녹음된 각양각색의 소리들을 총괄편집해 8시간짜리 소리 전시 무대를 엮어냈다.

전시실은 지난해 바닥, 천장 보수를 하면서 건립 30년 만에 처음 내부를 답답하게 채운 가벽을 헐어냈다. 기존 미술관의 판에 박힌 공간 얼개를 벗어나면서 김 작가의 자유분방한 사운드 퍼포먼스가 나래를 펼 터전이 만들어졌다. 모처럼 생긴 과천관의 자유공간에서 평상에 앉거나 누워 소리 자체를 몸으로 느끼는 체험은 값지다. 온갖 잡음이 엉킨 우리 일상에서 존재의 순수한 소리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7월10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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