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사악한 마녀가 죽었다!” 1939년도 뮤지컬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봤을 때 내심 궁금했다. 회오리바람에 도로시를 싣고 온 집에 깔려 동쪽 마녀가 죽었는데 왜 다들 기뻐하는지. 금발 마녀가 넌지시 “동생인 동쪽 마녀보다 더 사악”하다 말하는 서쪽 마녀 역시 그저 동생의 유품인 신발을 되찾고 싶은 거 아니었나.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는 영화의 원작인 프랭크 바움의 동명 동화(1900)를 “엉뚱하지만 곱씹어보면 당연한 발상의 전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으로 뒤집은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소설 <위키드>(1995)에서 출발했다. 초록 피부의 서쪽 마녀 엘파바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때문에 오해를 받았을 뿐이다. 도로시를 돕는 금발 마녀 글린다는 알고 보니 인기에 연연하는 허영 덩어리였다. 100여년 전 고전을 재해석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세 번의 프로덕션만으로 국내 누적관객수 60만명을 넘긴 비결 중 하나 아닐까. 오늘의 <위키드>를 있게 한 <오즈의 마법사>. 둘은 과연 어떤 사이일까.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도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 당시 17살이던 주디 갈런드가 주인공 ‘도로시’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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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X 스핀오프(spin-off)는 무언가를 ‘분리한다’는 뜻. 원작에서 새롭게 가지를 뻗어 나온 이야기다. 원작과 세계관 정도를 공유하지만 주인공이나 줄거리가 전혀 다르다.
예를 들면 배우 다니엘 헤니가 출연 중인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국제범죄수사팀>은 미 연방수사국(FBI) 범죄심리수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원작의 수사 범위를 국외로 돌리고 주인공들도 다 바꿨다.
하지만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장소 역시 마법의 나라 오즈와 에메랄드시티로 동일하다. 서쪽 마녀와 금발 마녀도 원작과 똑같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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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국어사전은 외전을 본편에서 빠진 부분을 따로 적은 전기, 정사 이외의 전기라고 풀이한다. 역사 서술에서 나온 말이다. 스핀오프처럼 주인공이 다 바뀌기보단 주연보다 조연을 조명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조지 R.R.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 외전 <세븐킹덤의 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원시리즈 1부 <왕좌의 게임>보다 100여년 정도 앞선 이야기를 담았다. 원시리즈에선 큰 비중이 없는 ‘키 큰 던칸 경’과 ‘아에곤 5세’의 젊은 시절 모험을 그린다.
<오즈의 마법사> 원작이 도로시의 모험담을 그린다면 <위키드>는 두 마녀의 우정이 이야기의 뼈대다. 원작에서 배제된 이야기를 그린 외전으로 볼 여지가 있되, 한편으로는 원작과 평행하는 같은 선상의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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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X 프리퀄은 원작보다 앞서 일어난 이야기를 말한다. 시기만 앞서는 게 아니라 원작의 핵심 서사로 이어지는 전사여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대표적으로 <스타워즈>와 <혹성 탈출> 시리즈가 있다. <스타워즈>는 가장 먼저 나온 ‘새로운 희망’(1977)을 4편으로 삼아 시리즈를 이어갔고 1999년이 돼서야 1, 2, 3편을 제작했다. 이 프리퀄을 통해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키드>는 원작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굳이 <오즈의 마법사>를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시점은 두 마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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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퀄→? 패러퀄(paraquel)은 평행하는 이야기(parallel story), 원작과 비슷한 시간대에 펼쳐지는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2013)의 패러퀄로 볼 수 있다. <맨 오브 스틸>이 슈퍼맨의 탄생과 활약을 그렸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슈퍼맨의 활약이 빚어내는 위험을 통제하려는 배트맨이 맞서는 이야기다.
원종원 교수는 “<위키드>는 원작과 같은 이야기를 초록 마녀의 입장에서 새롭게 보면서 뒤집기의 통쾌한 묘미를 준다”고 말한다. 뮤지컬 <위키드>는 12일부터 8월28일까지 7주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른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사진 클립서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