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쉘터스: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전이 열리고있는 아르코미술관 1층 전시장. 왼쪽에 유기동물 대기소 개념을 펼친 ‘레어콜렉티브’팀의 구조물이, 오른쪽엔 난민 관련 서적들을 비치한 리서치 아카이브가 보인다. 그 뒤 안쪽의 천막은 탈북난민들의 정착서류를 접수받는 황두진 건축가 팀의 가상시설이다.
“전국 250여개소에 흩어진 예비군훈련장이야말로 수십만 탈북난민 문제를 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넓은 훈련장이 있고, 식당이나 각종 교육시설 등도 있으니 그대로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중견 건축가 황두진씨가 눈을 빛내며 내놓은 ‘탈북난민 정착촌’ 모델은 ‘역발상’이 솔깃하게 다가온다. 8일 오후 기획전 ‘뉴 쉘터스(New Shelters):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8월7일까지)의 개막행사가 열린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황 건축가는 허름한 천막이 들어선 한구석 전시공간으로 기자를 안내하더니 예비군 훈련장의 세부적인 재활용 계획을 설명하는 자신과 군사전문가 양욱씨의 동영상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잠정적 완충지대’란 제목이 붙은 이들의 작업개념은 유사시 북한에서 최소 30만 이상 넘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난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자치공간을 예비군 훈련장에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빌린 컨테이너로 주거공간을 만들고, 난민들이 식당에서 공동 취사를 해 각자 거처에 나눠 배식하며, 학교나 삶터 운영 등을 자체적으로 꾸리되 다양한 직업, 직능을 가진 예비군들이 자원봉사 성격으로 정착을 돕는다는 발상이다. 황 건축가는 “수용소처럼 새 시설을 짓는 것을 피하고 군사 인프라를 중심으로 철저히 기존 시설과 인력을 재활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했다. 천막 안 탁자 위에는 부드러운 글투로 풀어쓴 정착민 입소지원서도 놓여있어 관객들이 직접 쓰는 체험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딱딱한 관청서류의 글투 대신 편안하고 정중한 글투로 난민의 인적사항과 정착계획을 묻는 내용이다. 새 체제를 불안감 속에 처음 접하는 난민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해야한다는 생각을 문서서식 디자인에서부터 반영해야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건축저널리스트 박성태씨가 총괄기획한 이번 전시는 난민문제에 대해 국내 건축가들이 고민하는 사회적 해법을 처음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자리다. 황 건축가를 포함해 다섯 건축가팀의 해법과 대안들이 전시장 곳곳에 펼쳐진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유기동물의 관리 문제를 난민 문제와 접목시킨 건축디자이너 그룹 ‘레어콜렉티브’는 주택 차고나 마당공간을 터서 만든 동물들을 위한 임시 대기소 목구조 모형을 선보였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의 공동 논의를 거쳐 나온 이 작업은 ‘마음 한쪽 마당 한쪽 내어주기 프로젝트’란 제목대로 실현가능한 대안이란 점이 주목된다. 김찬중 건축가와 이주여성을 위한 공동체 모임을 꾸려가고 있는 박진숙씨, 산업공학연구자 김경옥씨는 격리된 구조인 난민촌 시스템을 벗어나 도시정착지 난민이 쓰는 휴대폰 등의 모바일 빅데이터를 이용해 이들이 사회에 원만히 정착할 수 있는 정보를 얻고 활용하자는 ‘빅데이터 셀터링’ 기법을 제시한다. 난민화되고 있는 한국 청년세대와의 생생인터뷰를 담은 차지량 작가의 영상물이나 난민 관련 책자를 비치한 리서치 아카이브 등도 난민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파비앙 브러싱의 영상물 `스파이크 의자'. 돈을 집어넣어야 앉을 자리에 솟은 스파이크가 사라지는 가상벤치를 통해 신자유주의시대의 비인간성을 비판한다.
독립기획자 목홍균씨가 만든 2층의 ‘홈리스의 도시’ 기획전(8월7일까지)도 1층 전시와 흥미롭게 엮어서 볼 수 있다. 안정적인 정주 공간이었던 집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누구든 보금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사는 지금의 황막한 세태를 국내외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성찰한 설치, 영상작업들이 나왔다. 노숙자를 몰아내기 위해 건물 유리창이나 주변에 뾰족한 쇠 스파이크를 설치한 건축주에 맞서 미국, 영국 작가들이 간이침대나 책장을 놓는 반스파이크 작업의 영상들이나 돈을 넣어야만 앉을 자리에 솟아난 스파이크가 사라지는 비인간적인 벤치 구조물을 만들어 보여주는 파비앙 브러싱의 작업들이 울림을 던진다. (02)760-485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용관 건축사진가, 아르코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