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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어둠 속에서 조각과 영상이 몸을 섞었다

등록 2016-07-18 22:17수정 2016-07-18 22:18

일민미술관의 포르투갈 거장 2인전 ‘멀리 있는 방’
‘멀리 있는 방’전의 2층 전시장 일부. 후이 샤페스의 철제 조각 ‘너의 손들’이 허공에 부유하듯 내걸린 모습이 보인다.
‘멀리 있는 방’전의 2층 전시장 일부. 후이 샤페스의 철제 조각 ‘너의 손들’이 허공에 부유하듯 내걸린 모습이 보인다.

칠흑 같은 전시장에서 시간을 떠낸 영상과 공간을 빚은 조각들이 서로 몸을 뒤섞는다. 사람들의 눈빛이 스멀거리는 영상들의 희미한 빛을 받으며 주변의 철조각 덩이들이 시의 운율처럼 나풀거리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 마련된 포르투갈 거장 2인전 ‘멀리 있는 방’에는 국내의 조각전이나 미디어아트전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시적인 감성이 넘실거린다. 1980년대부터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뒤섞어 이민자, 노동자들의 절박한 표정과 삶을 담은 실험영화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거장 감독 페드루 코스타(58)와 물성보다 영적인 에너지를 드러내는 추상 조각으로 각광받는 후이 샤페스(52)의 절묘한 협업 무대다. 그들의 다섯번째 협업이라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평면의 화폭처럼 비치는 공간적 연출 효과다. 장르의 속성상 함께 어울리기 쉽지 않은 영상과 철제 추상 조각들이 희미한 공간의 명암 속에서 붓으로 내지르는 획이나 색감처럼 기운을 내뿜으며 명멸한다. 어둑어둑한 1~3층의 전시를 더듬거리면서 돌아보면 형상보다도 영혼, 에너지의 흐름 같은 시적인 감성들이 전시장 전체에 흐른다는 것을 차츰 느끼게 된다. 자신의 여러 실험영화들에서 따온 코스타의 영상은 인간과 자연의 무심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아프리카 화산섬 카보베르데의 격렬한 분화 장면이나 소음이 무성한 현지 마을의 일상 풍경, 어둠 혹은 바람 속에서 응시하거나 독백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 등은 거대한 목적이나 질서에 의해 세상이 틀지워져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풀어내는 듯하다. 이에 화답하듯 샤페스의 철조각들은 육중한 철판이나 곡선 모양의 구조물들이 공간에 매달려 나풀거리거나 부유하는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심해의 물고기처럼 공간을 떠다니는 철조각들과 사람들의 번득거리는 눈빛과 표정을 담은 영상들은 세상의 불가해성, 인간 의식의 심연에 대한 신비감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리스본에서 온 석공이 낭랑한 목소리로 삶에 대해 독백하는 영상이 교도소 면회실 칸막이 벽 같은 철제 구조물을 통해 투영되는 2층 전시실 안쪽 공간은 감상의 고갱이라 할 만하다.

‘멀리 있는 방’전의 2층 전시장 일부. 후이 샤페스의 철제조각 ‘너의 손들’이 허공에 부유하듯 내걸린 모습이 보인다.
‘멀리 있는 방’전의 2층 전시장 일부. 후이 샤페스의 철제조각 ‘너의 손들’이 허공에 부유하듯 내걸린 모습이 보인다.

2005년부터 협업해온 두 작가는 장르간 융합에 남다른 의욕을 보여왔다. 특히 코스타는 2000년대 이후 특유의 다큐픽션 영상들을 여러 국제미술전에 출품했고, 2009년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각자 다른 장르에서 협업을 위해 가능한 상상력과 현실적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깊이있게 고민한 내공 또한 느껴지는 전시다. 출품된 영상과 조각의 형상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오랫동안 머물며 무심하게 지켜보기를 권한다. 8월14일까지. (02)2020-205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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