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조 도예가의 신작 `산동(山動)'. 옆으로 슥 기울어외형에 화장토가 흘러내린 흔적들로 가득한 표면의 모습에서 자유로움과 비장감이 느껴진다.
윤광조, 오수환 작가 ‘희수’맞아 서늘한 2인전
내키는대로 붓질 흙질해온 30여년 작업들 한자리에
내키는대로 붓질 흙질해온 30여년 작업들 한자리에
작가가 요사이 빚었다는 그릇과 병들은 산덩어리 형상이다. 온 몸에 회색빛 흙물이 줄줄이 흘러내린 흔적을 두르고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어진 산세의 자태다. 오롯이 한 방향으로 내달리려는 비장한 의지가 감돈다.
한국 도예계를 대표하는 장인으로 꼽히는 윤광조 작가가 올해 70살을 맞아 내놓은 신작 ‘산동(山動)’은 산이 움직인다는 뜻의 제목이 절로 와닿는다. 조선초 분청사기를 계승해 40여년간 자기 삶과 현대 조형정신을 끊임없이 투사해온 그지만, 이번 신작에는 겸허함이 물씬하다. “나이먹고 기력이 쇠해 점차 스러져가는 내 모습을 표현했다”고 했다.
서울 인사동길 가나인사아트센터 1층과 지하에 ‘산동’을 비롯한 그의 신구작 40여점이 모처럼 나왔다. 가나문화재단이 지난달부터 마련한 오수환 화가와의 2인전 ‘놀다보니 벌써 일흔이네: 유희삼매(遊戱三昧) 도반 윤광조·오수환’이 멍석을 깔았다. 70년대 대선배인 고 장욱진(1917~1990) 화가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었고, 94년 작고한 한국화가 황창배와 함께 호암갤러리에서 3인전을 열면서 평생의 도반이 된 오수환 화가와의 2인 회고전이다. 만년 술친구로 서로를 ‘윤 도사’, ‘오 대인’이라 부르는 동년배 두 대가의 작업 여정을 보여준다.
경주 도덕산 바람골에 20여년 칩거하면서 8년간 서울 전시를 끊었던 윤 작가의 30여년 작품세계를 압축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 점이 반갑다. 엄지, 검지로 분청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죽죽 그은 90년대초의 ‘정(定)’ 연작, 귀얄붓으로 흘림 효과를 처음 시도한 90년대말의 바람골 연작 등이 잇따라 나타난다. 90년대 절에서 참선하던 중에 본 헛것들을 동동말은 짚풀데기 붓으로 그릇 표면에 휘휘 그려넣었다는 93년작 ‘산중일기’의 회오리 같은 무늬가 압권이다. 80년대 이래 10년을 주기로 변화해온 윤광조의 작가적 삶의 궤적을 전해준다.
2~4층에 40여점이 걸린 오수환 작가의 깔깔한 추상회화들은 윤 작가의 질박한 도예작품들과 기질면에서 딱 들어맞는다. 작가는 70~80년대 단색조 원로작가들에 이어 80~90년대 한국 현대추상 회화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온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꼬장하면서도 율동감이 넘치는 문자풍 이미지들로 강한 인상을 심은 그의 추상화풍은 서양 회화의 작법으로 문인화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지녔다. 전시장에는 80년대말, 90년대초의 ‘곡성’부터 90년대 ‘적막’, 2000년대초의 ‘변화’, 현재의 ‘대화’까지 시기별 대작들이 묶음지어져 걸렸다. 90년대까지 힘차고 거친 필력을 부리다가, 이후 집요한 드로잉, 스케치 작업을 반복하면서 문자 추상이나 색채와 선의 조응 같은 무의미, 초탈의 세계로 회화적 확장을 거듭하는 과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을 항상 딴짓을 도모하는 ‘청개구리’라고 부르며 40여년 자기 삶과 생각대로 작품 만들기를 고집해온 두 대가의 유유자적한 경지를 살펴볼 수 있다. 21일까지. (02)736-102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전시에 처음 공개된 고 장욱진 화백과 윤광조 도예가의 합작인 도자판 작품 `닭'. 1984년 장욱진 화백이 윤광조 도예가의 띠동물인 닭을 도자판에 그려주면서 만들어지게 됐다고 한다.
전시장에 내걸린 오수환 작가의 추상화 연작 `변화'(2008). 붓글씨를 떠올리게 하는 선의 힘찬 움직임과 율동감이 돋보이는 대작들이다.
오수환 작가의 대작 앞에서 정담을 나누고 있는 오 작가와 윤광조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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