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작가가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신작 ‘한국현대사-잠들지 못하는 남도’(2016).
신학철 작가의 2015년작 ‘한국현대사-광장’ 서울시청 앞 광장의 세월호 촛불 집회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화가에게 민중은 ‘몸’이다. 이땅의 산하와 도시 광장에서 민중은 거대한 몸뚱아리가 되어 솟구치거나 뭉쳐선다. 몸 구석구석에 학살당한 광주시민의 주검들이 뒤엉키고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빛나는 의지가 아롱져 있다.
지난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 화랑 본관 안쪽에 내걸린 민중미술 대가 신학철(73)의 신작들은 그런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과 시대를 사는지를 충격적으로 짚어준다. 붓을 든지 50년을 바라보는 연륜임에도, 격동과 아픔의 민족사를 화폭에 쟁여넣으려는 작가의 붓부림은 느슨해지지 않았다. 신작 아크릴화 ‘‘한국현대사-잠들지 못하는 남도’는 충격적인 이미지 전개가 눈을 때린다. 흰옷입은 한 민중이 육신이 찢겨진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몰골과 소총 개머리판이 뒤발된 이미지 콜라주 덩어리를 끌고서 창공의 여명을 향해 비상하고 있다. 그 아래 별밤에 잠긴 이땅의 산들이 보이는데, 하늘의 먹구름과 겹쳐진 심연 같은 배경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남도 바닷속을 떠올리게도 한다. “영령들을 곱게 보낼 수 없을 만큼 시절이 수상해 진혼곡 부르듯 그렸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신작 옆으로는 서울시청 앞 세월호 촛불 집회장 한가운데 거인 남자의 벌거벗은 뒤태가 도사린 그림이 있다. 지난해 그린 ‘한국현대사-광장’. 역사를 움직이는 민중의 선량한 에너지를 남성의 우람한 몸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촛불의 물결과 알몸의 대비가 기묘한 시각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에 비해 큰 눈과 벌어진 입이 얼굴 자체가 되어버린 한 여성의 머리통을 그린 '한국현대사-유체이탈'은 통렬한 풍자화에 가깝다. 양심과 윤리를 팽개치고 말과 힘을 남용하는 정치인, 종교인을 짜깁기 기법으로 뒤틀고 해체해 비아냥거린다.
신 작가는 70년대 팝아트, 전위미술에 빠졌다가 80년대 이후 우리 역사의 여러 극적 이미지들을 끌어들여 ‘한국 근·현대사’ 연작들을 쏟아냈다. 지난해 간병해오던 부인과 사별하고 얼마전 심장수술까지 받았지만, 다시 심신을 추스려 지금 시절을 반영한 역사화 작업들을 재개했다. 이번 전시는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소재로 체제 풍자적인 인물군상을 그려온 팡뤼진 작가와의 2인전이다. 부유하는 인물상과 개들이 등장하는 팡뤼진의 냉소적인 판화와 유화 작품들도 같이 볼 수 있다. 9월25일까지. (02)720-1524~6.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학고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