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몸을 부대끼며 공연했던 남성인형 앞에 선 정금형 작가. 사물과 인형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작업을 계속해왔다는 그는 지금도 “내가 왜 이 작업을 하고있지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말한다.
인형극과 춤판, 퍼포먼스, 영상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일하는 정금형(36) 작가는 21세기 한국 예술판의 ‘피그말리온’이라 할 만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이 빚은 여인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졌던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그는 10여년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시도들을 펼쳐왔다. 틈틈이 애착을 갖고 수집한 섹스숍의 성인 인형, 드론과 압축기, 유압설비 등의 기계, 재활용 기구와 인체 모형 같은 죽은 사물에 성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몸짓을 결합시켜 인간의 생기를 불어넣는 ‘교접의 과정’이 정금형 스타일의 춤과 행위예술 작업이었다.(그의 이름 ‘금형’이 새 물건의 틀을 찍어낸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는 게 흥미롭다.)
국내 공연예술계와 미술판에 새로운 상상력의 물꼬를 텄다는 호평을 받아온 정 작가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 자신의 공연에 쓰인 낯선 수집품들을 작품처럼 차곡차곡 진열해 놓았다. 지난해 국내 최고 권위 미술상인 16회 에르메스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개인소장품’전이다.
정금형 개인전 ‘개인소장품’에 나온 각종 도구와 인체인형들. 그의 퍼포먼스와 공연에 쓰였던 것들이다.
밝은 조명 아래 수십개 흰 탁자가 늘어선 진열대에는 섹스숍에서 파는 성인용품 인형과 마네킹의 머리상, 인공호흡 실습을 위한 상반신 모형, 남자의 성기모형, 여성 속옷, 재활치료용 도구, 진공청소기, 드론, 헬스머신 등 수십점의 기계와 도구 등으로 가득하다. 인공의 몸들은 머리와 팔, 상반신, 하반신 등의 신체부위별로 나뉘어 있고, 기계와 도구들은 용도별로 박물관처럼 정연하게 분류된 전시품들은 이질적인 사물성을 내뿜고 있다. 진열대 위쪽에는 이런 기구와 인형들을 이용해 그가 지난 10여년간 벌여온 육체극의 영상들을 틀어주는 모니터들이 돌아간다. ‘휘트니스 가이드’, ‘심폐소생술 연습’, ‘재활훈련’ 등의 기상천외한 이름을 붙인 공연 장면과 그 준비 과정들을 보고 나서야 관객들은 이 낯선 물품들의 용도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2009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오르가즘에 집착하는 6가지 방법’이란 부제 아래 다양한 구도로 사물, 기계와 육체적 연애를 나누는 ‘6종 금형세트’ 공연을 선보이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남성의 가면을 단 진공청소기가 작가의 몸을 핥거나 남자의 두상이 달린 허리마사지 헬스 머신과 야릇한 행위를 반복하는 특유의 관능적 작업들은 객석의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집단관음증적 구도를 띠고 있다. 작가는 이런 공연들을 준비하고 소품들을 꾸리고 이동시키는 영상 자체를 보여주거나(2015년 시청각의 ‘무브 & 스케일’전) 남성성이 깃든 사물들의 물성 등을 부각시키는 양상(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동아시아 페미니즘'전) 등으로 미술과의 접점도 폭넓게 모색해왔다. 90년대 이후 한국 미술판을 뒤덮은 관념 일변도 개념미술의 진부한 전철을 벗어나 몸 자체로 세상과 자아를 다기하게 표현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각별해 보인다.
‘개인소장품’에 나온 각종 도구와 인체인형들. 그가 퍼포먼스와 공연에 쓰기위해 수집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는 정금형 스타일의 작업 소품들을 공연에서 분리해 수집 형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공연 때 전달했던 관음증적 정서, 사물에 대한 사랑과 집착들을 박물관 전시 형식으로 되새김한 전시는 공연의 긴장감과는 다른 맥락에서 그의 전방위적인 몸 작업들을 복기해볼 수 있는 기회다. 작가는 “어릴 적 인형놀이를 즐겨했는데,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내 호흡과 몸짓으로 다양한 사물들을 찾아내어 생명의 몸짓을 불어넣는 작업에 애정을 갖게 됐다”며 “전시는 미지의 사물에 대한 관찰과 탐구를 계속해온 내 삶의 과정들을 담았다”고 했다.
작가는 31일과 9월1일 경기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소방훈련’이란 제목으로 극장에 불이 났을 때 대피 방법을 작가와 배우들의 몸짓으로 풀어 보여주는 공연을 펼친다. 9월24일에는 작가와의 대화, 9월10일과 10월8일에 작가가 함께하는 가이드투어도 마련된다. 10월23일까지. (02)3015-3248.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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