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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도리안 그레이’ 매끈한데 허전하네

등록 2016-09-11 14:14수정 2016-09-11 21:32

리뷰 |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오스카 와일드 대표소설 뮤지컬로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그려
김준수·박은태·최재웅 고루 안정적 연기
‘킬링 넘버’ 없고 장면전환 너무 잦아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서 배질 역을 맡은 최재웅(왼쪽)과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도리안 역의 김준수. 사진 씨제스컬쳐 제공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서 배질 역을 맡은 최재웅(왼쪽)과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도리안 역의 김준수. 사진 씨제스컬쳐 제공
6일 언론에 공개된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연출 이지나, 대본 조용신)는 군더더기를 쳐내는 방식으로 일단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듯 보인다. 복잡함을 최대한 줄이려는 듯 무대장치는 대체로 단출하다. 원작의 방대한 줄거리에 비하면 대사 역시 깔끔하게 정리한 느낌이다.

원작은 19세기 유미주의(아름다움의 창조를 예술의 최고 가치에 두는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에 휩싸여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맞바꾸고 온갖 악행 끝에 파멸을 향해 가는 ‘아름다운 남자’ 도리안 그레이의 일대기를 그리는 이 소설은 현학적인 대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거나 “감각만이 영혼을 치유하는 것”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지나 연출은 “오스카 와일드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은 현란한 대사와 심리표현을 공연화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고 말했다.

귀족들의 파티장, 도리안의 첫사랑 시빌 베인(홍서영)이 엉망진창 연기를 선보이는 공연장 등 몇 장면을 빼면 무대 위엔 오롯이 세 명의 배우만 남는다. 화가 배질(최재웅)은 영혼과 육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한 청년 도리안(김준수)에게 마음을 뺏긴다. 도리안의 초상화에 자신의 영혼을 담았다고까지 말하는 배질은 친구 헨리(박은태)가 도리안에게 접근하는 것이 영 탐탁지 않다. 배질의 우려대로 헨리는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 등을 속삭이며 도리안이 영원한 젊음을 갈구하며 쾌락의 길을 걷게 만든다. 원작보다 헨리의 비중이 훨씬 커진 느낌이다.

김준수는 순수 청년에서 죄책감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타락한 모습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한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도 다른 뮤지컬이라면 호불호가 나뉘었을 테지만 줄곧 어둡고 우울한 이번 작품의 분위기와는 잘 맞아떨어진다. 원캐스팅으로 김준수와 짝을 이룬 박은태, 최재웅이 안정된 연기력으로 공연의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다 도리안의 파멸을 예고하는 듯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음악을 작곡한 음악감독 김문정의 솜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한 장면.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한 장면.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장면 전환이 잦아, 과연 무슨 의도로 넣었을까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지나가 버릴 때도 있다. 시빌 베인의 자살을 도리안의 대사로만 처리하거나, 원작에선 도리안의 심리 변화에 따라 서서히 변하는 초상화를 처음부터 기괴하게 표현하는 등 서둘러 처리한 부분들 탓에 때때로 이야기 고리가 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새로운 뮤지컬’을 표방하며 앙상블 연기 도중 과감하게 무대에 검은 막을 내리고 그 위에 ‘김준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영상을 쏘는 것도 어색하게 다가온다. 팬 서비스 차원으로 보이는데, 무대를 가려 ‘라이브 퍼포먼스’의 장점이 퇴색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귀에 확 꽂히는 ‘킬링 넘버’가 없는데다 현학적인 대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빛나던 젊음/ 그 찬란한 봄날 사라지나/ 그림 속 저 사람/ 도대체 누군가.”(도리안의 마지막 대사) 도리안은 다 잃고 나서야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이 가져온 참혹함을 깨닫는다. 그 모습이 섬뜩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우리 모두 욕망 앞에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10월29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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