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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나무작대기 세우기로 소통의 욕망을 이야기하다

등록 2016-10-03 15:39수정 2016-10-04 00:23

노숙자 출신 청년작가 유목연의 두산갤러리 신작전 ‘나뭇가지를 세우는 사람’
숲이 된 전시장서 세계 8개 도시에 나무 작대기 세우려다 실패 거듭하는 영상 틀어줘
무의미한 듯한 행위 속에 꿈틀거리는 소통에 대한 욕망
유목연 작가의 영상 나뭇가지를 세우는 사람. 세계 8개 도시 거리나 광장에서 나무작대기를 세우려다 실패를 반복하는 단순한 행위작업을 보여준다.
유목연 작가의 영상 나뭇가지를 세우는 사람. 세계 8개 도시 거리나 광장에서 나무작대기를 세우려다 실패를 반복하는 단순한 행위작업을 보여준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 두산갤러리 쇼윈도에선 요사이 거의 매일같이 ‘기행’이 벌어진다. 군복, 평상복을 입은 청년들이 그 안에서 길쭉한 나뭇가지 작대기를 반듯이 세우려다 실패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수시간 되풀이하는 것이다. 서지 않을 것이 뻔한데 공들여 작대기를 세우려는 몸짓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광경을 힐끗 보면서 전시장 안에 들어가면 생나무와 풀을 옮겨 심은 숲이 펼쳐진다. 나뭇조각을 밟으며 안쪽에 들어가면 작가 유목연(38)이 쇼윈도와 똑같이 벌인 퍼포먼스 영상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 터키 안탈리아, 한국 안산 등 세계 8개 도시의 거리·광장에서 작가가 나뭇가지를 거듭해 세우려는 작업들이 2시간 넘게 이어진다. 주위 풀숲 곳곳엔 간이의자가 널렸다. 관객들은 앉아서 숲내음을 맡으며 영상을 감상할 수 있지만, 마냥 편하지는 않다. 이 땅의 도시 곳곳의 인공숲에서 볼 수 있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전시장 불빛 속에 재현된데다, 쓰러지는 작대기를 집요하게 세우려는 영상들은 피로감을 일으킨다. 와닿지 않는 화두를 붙잡으려 오랜 시간 참선하는 선승의 고행 같기도 한데, 한참 지켜보면 점차 뚜렷해지는 배경들이 있다. 고풍스런 바로크식 건물들로 둘러싸인 유럽 도시의 광장에서 흠칫 작가에게 눈짓을 주다가 곧장 자기 갈 길을 가는 행인들의 행렬과 바닷가 항구 앞에서 작가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수평선으로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쾌속유람선의 이미지들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실체로 보여준다. 그 시간 속에서 작가가 의지를 갖고 행위를 하고 있다는 항시성을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두산갤러리에서 진행중인 작가의 영상설치 전시 ‘나뭇가지를 세우는 사람’은 지독하게 공들여서 지독하게 허망한 행위들을 보여주는 것이 뼈대다.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작가의 대답은 명료하다.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시간 속에서 무언가 계속 쌓고 이뤄지지요. 저 또한 무언가를 이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 그런 행위를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욕망이 작업을 촉발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시테 작업실 입주작가가 되어 작업했고, 두산연강예술상도 받은 그는 청년세대 작가군에서 가장 우뚝한 현실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받는다.

카드빚에 몰려 한때 노숙도 했고, 그때 경험을 밑천 삼아 4년 전부터 쇼핑카트 위에 설치작품처럼 만든 미니 포장마차 ‘목연포차’를 끌며 영업도 해왔다. 예술과 생활 사이를 넘나드는 유목작가의 삶에 익숙해진 경험은 이후 작업 때마다 눅눅하게 녹아들어갔다. 지난해 대안공간 사루비아에서 어두컴컴하고 위험한 골목길 공간설치로 청년세대들의 강퍅한 현실을 비춘 전시는 그런 맥락에서 참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수년전 만들기 시작한 노숙자를 위한 생존 가이드북과 강연 영상물 등의 기록물들도 작가가 애착을 갖고있는 작업들이다. 예술이 생존 수단이기에 그가 보는 작업의 시공간이 기존 미술의 시야와 전혀 다른 각도로 나타나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시장에 심은 나무에서 새 잎사귀가 돋았을 때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어요. 하찮은 것 같아도 바로 제가 해서 이뤄낸 게 중요하니까요.” 전시는 8일까지. (02)708-505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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