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73명 명단 표지 공개로
작성-실행 과정 뚜렷해져
문체부 해명자료 우왕좌왕
시민단체 “책임자 처벌” 요구
작성-실행 과정 뚜렷해져
문체부 해명자료 우왕좌왕
시민단체 “책임자 처벌” 요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를 확인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회의록이 보도(<한겨레> 11일치 1·8면)된 데 이어,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주장과 자료가 12일 공개됐다.
이로써 그동안 의혹이 제기돼온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과정이 한층 선명하게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12일 <한국일보>는 “지난해 5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에서 내려왔다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푸념을 들었다”는 예술계 한 인사의 말을 인용하며, 이 인사가 당시 찍어둔 9473명의 명단이 담긴 블랙리스트 문건의 표지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을 보면, ‘합계 총 9473인, 세월호 시행령 폐기선언 문화예술인 594인, 문재인 후보지지 선언 6517인, 박원순 후보지지 선언 1608인’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 예술계 인사는 문건 자체는 A4 용지 100여 장이 넘는 방대한 양으로, 문화인들의 구체적 명단 등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세월호 시행령 폐기선언 문화예술인’은 지난해 5월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예술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앞서 공개된 ‘5월29일 예술위 회의록’을 보면,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은 예술위 회의에서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라고 발언한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5월 중 청와대가 리스트를 만들어 문체부로 내려보냈고, 이를 문체부 산하기관인 예술위 등이 실제 기금 지원 심의 등에 활용했으리라는 추론이 나온다.
특히 이날 권 전 위원장은 “우리 예술위원들이 추천해서 책임심의위원들을 선정하면 해당기관에서 그분들에 대한 신상파악 등을 해서 ‘된다, 안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밝혀, 실제 블랙리스트에 따라 심의위원이나 예술인들을 배제시켰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에 대해 권 전 위원장은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제가 위원장이던 시절에는 블랙리스트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제 임기가 끝나고 나서 리스트를 봤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가 연일 공개되는데도, 청와대와 문체부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9473명의 블랙리스트’에 대해 “문체부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만 밝혔다. 문체부는 오전 해명자료를 내겠다고 했다가 오후 들어 낼 생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김정훈 예술정책과장은 대변인실을 통해 “업무가 바빠서 지금 언론에 해명 내용을 말해줄 수 없다. 내일(13일) 국정감사에서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야권은 일제히 “매카시즘의 부활”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문화연대(집행위원장 이동연)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청문회 실시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예술위원장과 책임자 사퇴 △가칭 예술검열감사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이재정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과거 미국에서 불어닥친 매카시즘의 광풍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 보도된 명단은 세월호 참사, 문재인 후보지지, 박원순 후보지지 등 명백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술인을 관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준현 노형석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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