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44년 사이 순원왕후가 막내딸 덕온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무늬가 새겨진 시전지에 딸의 안부를 받고 반가웠다는 사연을 담고 있다. 흘림 필체에서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정이 우러나온다.
조선왕조 23대 임금 순조의 왕비였던 순원왕후(1789~1857)는 16세기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와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권력자로 꼽혔던 당대의 여걸이었다. 19세기 초 세도정치의 기틀을 세운 외척 김조순의 딸이었던 그는 손자 헌종(재위 1834~1849)과 양자 철종(재위 1849~1863)의 시대를 합쳐 10년간 두차례나 수렴청정을 하며 조선을 쥐락펴락했지만, 정작 이 여인의 삶 자체는 온통 슬픔과 회한으로 덮여 있었다. 남편 순조를 비롯해 최근 인기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인 맏아들 효명세자(1809~1830)와 딸들인 명온공주(1810~1832), 복온공주(1818~1832), 덕온공주(1822~1844), 그리고 손자인 헌종까지 가족들을 모두 생전에 사별해야 했던 것이다.
지난달부터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덕온공주 한글자료’전은 곁자리가 늘 쓸쓸했던 여성 권력자의 속내를 엿보게 되는 전시다. 오롯이 남은 혈육으로 애지중지 키웠던 막내딸 덕온공주가 180년 전인 1837년 음력 8월 양반가로 시집을 갈 때 챙겨준 혼수품 문서인 길이 5m를 넘는 혼수 발기와 생전 공주, 사위 윤의선과 주고받은 한글 편지들이 눈을 아리게 한다. 은노리개, 백년화 향낭 등의 장신구와 그릇, 바느질 도구 등을 궁체로 적은 발기의 물목들과 딸이 낳은 아기의 건강을 걱정하는 진흘림체의 한글 편지글에는 어미의 안쓰러운 심경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덕온공주는 임금과 정비 사이에 낳은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1844년 아이를 낳다가 숨졌다. 전시장 안쪽에는 순원왕후가 딸의 제삿날 올릴 탕과 목면, 천엽회 등의 음식 물목을 적은 음식 발기도 나와 있다. 발기에 꾹꾹 써내려간 정갈한 글씨들 하나하나가 자식을 모두 떠나보낸 왕비의 비통한 마음을 생각나게 한다. 12월18일까지. (02)2124-6323.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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