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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독일 사부 가르침대로 ‘한국악기 홍 오르겔’ 짓지요”

등록 2016-11-08 18:51수정 2016-11-09 14:10

[짬] 국내 유일 파이프오르간 제작자 홍성훈 마이스터
경기 양평군 국수교회에 설치된 ‘산수 오르겔’ 앞에 선 홍성훈 마이스터. 사진 김승범 작가 제공
경기 양평군 국수교회에 설치된 ‘산수 오르겔’ 앞에 선 홍성훈 마이스터. 사진 김승범 작가 제공

‘파이프오르간’이란 악기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설치된 이 악기는 8천개의 파이프가 소리를 낸다.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원리는 피리와 같다. 각기 다른 ‘파이프 피리’로 화음을 내는 이 악기를 두고 서양 사람들은 ‘악기의 왕’이란 호칭을 붙여왔다.

홍성훈씨는 한국의 유일한 파이프오르간 제작자다. 지난 1997년 독일에서 오르겔바우(오르간제작)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고 돌아와 지금껏 15대의 파이프오르간을 만들었다. 그를 지난 7일 경기 양평군 국수리 작업실에서 만났다.

탈춤 전수·서울시립가무단 활동
기타 배우러 떠난 독일서 ‘새길’
“친구 권유로 오르겔 장인 만나”

1997년 10년만에 마이스터 자격
우리문화 담긴 오르간 제작 ‘18년’
사진가 김승범씨 기록해 책 펴내

최근 사진작가 김승범씨는 오르겔 제작자 홍씨의 삶을 조명하고 그가 만든 오르겔을 소개하는 책 <천상의 소리를 짓다-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을 펴냈다. 책은 홍씨가 서양약기 파이프오르간을 ‘한국 악기’로 만들기 위해 고투해온 20년 가까운 시간을 담고 있다. 양평 시골마을의 작은 예배당인 국수교회에 설치한 파이프오르간은 한국의 산수를 닮았다. 광주 임동주교좌 대성당 파이프오르간엔 한국의 피리 음색을 입혔고, 작은 파이프오르간인 ‘트루엔오르겔’은 한국 전통 뒤주 모양을 착안해 만들었다.

파이프오르간은 2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알렉산드리아인이 만든 ‘물오르간’이 그 기원이다. 한국에 들어온 지는 100년 남짓이다. “한국에 200대 정도가 있지요. 대학에서 배출한 오르겔 전공 연주자도 1천명이 넘죠.”

파이프오르간은 ‘만들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공간이 주어지면 그곳에 맞춤한 방식으로 설계한 뒤 악기를 ‘짓기’ 때문이다. 작은 것은 몇천만원대도 있지만 외국 유명제작사 작품은 대체로 10억원을 넘어간다. 홍씨 작품은 최고가가 7억원이었고 가장 저렴한 것은 4~5천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현재 직원 3명과 함께 양평 공방을 끌어가고 있다. 경쟁자는 오랜 경험과 자본력을 갖춘 유럽 등의 유명제작사이다. “저는 (그들과) 비교 대상이 될 만한 이력이 아니죠. 그래서 제게 일을 맡기는 주문자들은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결정합니다.” 그 생각이란 뭘까? “한국 땅에 한국 악기로서의 파이프오르간을 지어보자는 의지이겠지요.”

그는 파이프오르간이 한국 악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 악기에는 저음이 없어요. 아쟁 정도가 저음을 내긴 하지만 약하죠. 높은 소리를 내는 피리나 대금에 무한대역인 파이프오르간이 저음을 받쳐주면 보석처럼 빛나는 화음이 탄생합니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자 음악회를 자주 연다. 올해도 17차례나 열었다. “이번 가을 한달 동안 임동성당에선 오르겔 페스티벌을 열었죠. 지난해 국수교회에선 국악 <수제천>을 편곡해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했어요.” 지난달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에선 세종대왕이 만든 <여민락>을 편곡해 오르겔과 국악의 앙상블을 선보였다. “전주 공연 때 청중 300여명이 기립박수를 보냈어요. (연주가 청중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죠.”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파이프오르간이 없는 공연장엔 그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든 ‘바람피리 오르겔’이 직접 찾아갔다. 홍매화 문양이 전면을 감싸고 있는 이 오르겔의 파이프 200여개엔 후원자 이름이 적혀있다.

그는 한국인으론 두번째 오르겔바우마이스터다. 86년 독일로 건너가 이듬해부터 오르겔 제작 공부를 시작해 10년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은 오르겔 제작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유일한 나라이죠.”

마이스터가 된 뒤 귀국을 결심할 때 그의 ‘사부’는 “가능하면 ‘홍오르겔’을 만들어라. (너의 나라) 문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출발점은 프랑스 소리의 모방이었다. “독일 소리는 명쾌하고 칼날 같아요. 쨍하죠. 반면 프랑스는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파워풀하죠. 우리 소리와 닮았어요.” 유럽 국가들은 이런 고유한 음색차 때문에 다른 나라 장인에게 오르겔 제작을 맡기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 사람이 우리 대금을 아무리 잘 불어도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이유에서죠.” 그가 임동성당 오르겔을 포함해 여러 작품에서 오르겔 내부 악기 편제의 변화를 시도한 것도 한국적 정서를 닮은 소리를 내고 싶어서다.

청년시절 그의 이력은 ‘한국적 오르겔’을 추구하는 데 힘이 된다. “81년 흥사단에 들어가 탈춤과 풍물에 빠졌죠. 탈춤에 뜻을 두고 전수자의 길을 걷기도 했어요.” 84년말엔 무용 전공으로, 국내 유일 뮤지컬극단이었던 서울시립가무단에 들어갔다. “최주봉·전무송·박상원 같은 배우들과 공연을 같이 했죠. 어느 순간 ‘40살이 되어 내가 조역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런 회의가 찾아왔어요.”

극단을 1년만에 그만둔 뒤 그는 여동생이 공부하고 있던 독일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러 떠났다. 그뒤 독일에서 “어학 시험도 떨어지고 기타도 갑자기 싫어지는 그런 상황에서” 그는 떠밀리듯 오르겔에 입문했다. “그때 같이 유학하던 동료가 한국을 위해 오르겔을 배우라고 권했어요. 마침 제가 살던 뮌스터에 오르겔 장인이 있었죠.”

계획을 물었다. “한국에서 제가 만들기 시작한 파이프오르간을 이 땅에서 민중의 악기로 만드는 게 숙제입니다.” 내년 6월엔 그의 17번째 오르겔이 우크라이나의 교회에 설치된다. 한국 오르겔의 첫 수출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양평/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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