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나온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왼쪽)와 조선 말기 화가 오원 장승업의 <기명절지도> 병풍.
간송컬렉션의 고풍스런 명품 그림들과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처음 전시장에서 만났다.
9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디피)의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란 이색 기획전이 펼쳐지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조선 중기~말기 주요 화가들의 명품 그림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해온 비디오 거장 백남준(1932~2006)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 설치작품 <코끼리 마차>.
이번 기획전은 지난해 11월 간송재단 쪽과 백남준아트센터가 공동기획 전시와 작품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이래 내놓는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재단 쪽은 ‘달마도’로 유명한 17세기 대가 김명국과 18세기 조선 남종화의 대가인 현재 심사정, 숱한 기행으로 ‘조선의 고흐’란 별명이 붙은 호생관 최북, 19세기 화단의 마지막 거장 오원 장승업의 작품들을 내걸었고, 백남준아트센터 쪽은 백남준의 대표 소장품 28점을 맞세웠다. 60년대 고인의 퍼포먼스 작업인 <머리를 위한 선>과 80년대 이후의 대표작인 <비디오 샹들리에>, <코끼리 마차> 등이 나왔다.
주최 쪽은 “단순한 명품들의 나열을 벗어나 연관성에 의미를 두고 같은 소재를 과거 화가들과 20세기의 백남준이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다. 1960~70년대 서구에서 플럭서스 운동을 벌이며 현대미술의 거장이 됐지만, 평생 한국의 전통과 동양 사상을 작품에 녹여내려 애썼던 백남준의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들과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들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수집품들을 ‘이상향을 향한 갈망’ ‘인간에 대한 애정’ ‘미래에 대한 낙관’이란 공통적 맥락 아래 엮어 시대를 초월한 한국 미술의 특장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심사정의 대작 <촉잔도권>(부분). 국내 전통회화 중에서 가장 긴 작품으로 꼽힌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와 함께 선보인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대작들의 만남이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장구한 인류사의 전개 과정을 함축한 백남준의 대형 영상설치 작품 <코끼리 마차>와 국내 전통회화 사상 가장 긴 대작으로, 고대 중국 촉 지방으로 가는 길의 기기묘묘한 산세 풍경을 담은 심사정의 <촉잔도권>이 나란히 나왔다. 달에 대한 상념과 기원을 담은 장승업의 <오동폐월>과 티브이 설치작품 <달에 사는 토끼>, 부유함의 의미를 담은 <비디오 샹들리에 1번>과 복을 비는 마음이 담긴 장승업의 <기명절지도> 병풍 등을 서로 견줘 보며 감상할 수 있다. 과거 ‘보화각’으로 불렸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내부를 첨단 브이아르(VR) 미디어 기법을 활용한 가상현실 공간으로 재구성한 구범석 작가의 영상작업도 볼거리로 등장한다. 내년 2월5일까지. (02)2153-0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간송미술문화재단·백남준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