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 3세 연출가 한주선씨
할아버지는 일제 때 제주도에서 건너온 재일조선인이었다. 부모는 조선학교 부부 교원이었다. 나고야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란 그 역시 초·중·고 모두 조선학교를 거쳐 조선대 사범교육학부를 나와 조선학교 초등 교원이 됐다. 고등학교 때는 북한으로 수학여행도 다녀왔고, 대학 때 교생실습도 평양에서 했다. 그렇게 ‘당연히’ 사회주의만 알고 자란 그는 25살 때인 2000년 돌연 ‘제국주의 적국’으로 배웠던 미국으로 갔다. 비자를 받기 위해 국적도 ‘한국’으로 바꿨다.
“일본 사회에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의 처지를 자각하면서 한반도 분단의 현실도 실감하게 됐어요. 한쪽만 배운 민족교육에 대한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요. 새로운, 더 넓은 세상에 도전해보고 싶었죠.”
그때 마침 어머니가 미국 서부 덴버에 본부를 둔 국제시민교육단체 업위드피플(Up with People)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신청서를 보여주면서 권했다. 기꺼이 참가비를 내고 날아갔다. 시민배우 100명씩을 모아 공연하는 뮤지컬 <어 커먼 비트>(A Common Beat)였다.
오는 12·13일 마포아트센터에서 한-일 시민배우 100명과 함께 <어 커먼 비트> 서울 공연을 하는 재일한국인 3세 연출가 한주선(42)씨의 극적인 인생반전이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초·중·고·대 조선학교 나와 교원 근무
25살때 국적 바꿔 미 교육단체 연수
뮤지컬 ‘어 커먼 비트’ 참가해 연출까지
“지구시민으로 다름의 아름다움 배워”
작년 수교50돌 기념 첫 한·일 공동공연
“100일간 연습하며 ‘혼자 아니다’ 공감”
12·13일 마포아트센터서 두번째 무대
“미국 사회는 한마디로 충격이었어요. 피부색 인종 나이 국적… 배경은 모두 다르지만 사람으로서 심장 박동 소리(커먼 비트)는 같더라고요. 늘 소수자로 차별받던 일본 사회와는 전혀 다른 자유를 느꼈어요. 다름이 곧 아름다움이다는 것을 배웠어요.”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특징을 지닌 4개의 대륙(열정의 빨간대륙, 기품의 초록대륙, 신비의 노란대륙, 자유의 파란대륙) 사람들이 처음엔 서로 다른 대륙의 존재를 모른 채 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다른 대륙을 발견하고 다양한 문화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각 대륙 권력자들은 전통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륙간 교류를 막으려 한다. 갈등이 심해져 전쟁으로 돌입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로 이해하며 다 함께 춤과 노래로 ‘하나의 울림’을 연주해낸다.’
이런 줄거리의 <어 커먼 비트> 공연을 위해 100명의 세계 시민들과 저마다 다른 차림, 다른 배역을 맡아 100일간 연습하며 어울린 그는 업위드피플의 스태프가 됐다. 2001년 마침 피스보트 활동을 하던 일본인 친구가 승선을 권했다. 선상에서 승객 100명을 모아 <어 커먼 비트>를 처음으로 직접 연출했다. 이때 참여했던 일본인 승객들의 요청으로 이듬해 도쿄·오사카·나고야를 돌며 순회 공연을 했다. 뜨거운 호응에 용기에 내 2003년엔 아예 도쿄에 비영리단체 ‘커먼비트’를 꾸리고 전업으로 뛰어들었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일본에서만 4000여명이 출연해 1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어요.”
지난해는 한-일 수교 50돌을 맞아 일본 전역에서 자원한 50명과 서울에서 모은 50명이 서울과 후쿠오카에서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특히 서울에서는 ‘풀울림’이란 비영리단체가 한-일 연합공연을 적극 돕고 있다. 공동대표 5명 가운데 한명인 조미수(40)씨 역시 재일조선인 3세로, 피스보트 스태프 때 한씨와 인연을 맺어 10년 넘게 교유해왔다. 중학교 때까지 조선학교를 다녔고, 19살 때 한국 국적을 얻어 3년 전 성공회대 아시아엔지오대학원에 유학 왔다가 결혼해 안산에 살고 있다. 그는 “동북부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 같은 대재앙을 겪은 한-일 두 나라 사람들 모두 평화와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껴” 한-일 공연을 주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공연에는 서울에서 10대 청소년, 대학생, 취준생, 회사원, 교사, 공무원, 자영업자, 예술가, 주부, 사업가, 은퇴 부부 등 다양한 나이와 배경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중국인들도 일부 함께 했다. 오디션 없이 선착순 모집이기 때문에 음치·몸치들도 많지만 약 4개월간 맹훈련을 통해 춤과 노래, 연기까지 무난히 소화해냈다. 그동안 일본 참가자들이 네차례, 한국 참가자들은 한차례 서울과 도쿄를 방문해 호흡을 맞췄다. 그때마다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만나고, 워크숍을 통해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혔다.
“연습 시간이 더해갈수록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아졌어요. 지난 5·6일 마지막 리허설 때는 그 무뚝뚝하던 중년 남성들까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소통의 경험과 기쁨을 고백하더라고요. 혼자가 아니다, 함께하길 잘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공연과 상관없이 성공한 셈이지요.”
두 사람은 “남과 북, 동아시아인, 모든 지구 시민들과 함께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입장권은 풀울림(010-7384-1401·pullullim@gmail.com) 또는 인터파크(goo.gl/SdD9Ix)에서 예매할 수 있다.
ccandori@hani.co.kr
재일한국인 3세 풀울림 공동대표 조미수(왼쪽)씨, 뮤지컬 연출가 한주선(오른쪽)씨.
사진 풀울림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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