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작가 이강훈씨
서울 한복판을 꽉 채운 촛불은 거대한 예술무대였다. 100만 송이 촛불이 한순간 빛의 파도로 출렁이는 장면에선 숭고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이 특별한 미적 공간에서 특별히 주목받는 이가 있다.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43·사진) 작가다. 그는 경찰 차벽을 꽃벽으로 승화시켰다. 그를 지난 2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19일 촛불집회 때 2만9천장, 26일엔 9만2천장의 꽃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작업 비용은 예술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세븐픽쳐스를 통해 모았다. 1차 땐 50명(158만원), 2차 땐 104명(313만원)이 후원했다. 꽃그림 작가로는 1차 26명, 2차 82명이 참여했다.
“처음엔 작가들 위주로 신청을 받으려 했어요. 그런데 알려지면서 고교생이나 외국에 계신 분들도 그림을 많이 보내왔어요. 2차 땐 일반인 비중이 30% 정도 됩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일러스트 작가다. 1998년부터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 많을 때는 10군데 매체에 그렸지만 지금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한겨레21’에만 그리고 있다. 표지를 그린 책도 300여권이나 된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주원규 작가의 <열외인종 잔혹사>의 표지가 그의 작품이다. 여행기와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리스 섬 여행기 <나의 지중해식 인사>와 도쿄 무대 여행소설 <도쿄 펄프픽션>을 펴냈다. 소설가 김중혁씨는 한 기고문에서 “이강훈의 색과 선을 부러워했다”며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국내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평하기도 했다.
“착한 시위에 대한 강박 깨자” 기획
경찰 버스에 꽃스티커 붙이기 제안
예술크라우드펀딩 받아 비용 마련
고교생·외국서도 그림 보내와 ‘감동’
“부모·자녀 함께 ‘위법 체험’ 인상적”
자발적 스티커 청소에 당황하기도
그에게 꽃스티커 작업은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저항하고 있음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행위”이다. 차벽은 정부와 시민사회를 가로막는 벽으로, 부당한 공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는 “꽃스티커는 ‘평화’와 ‘위법’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변호사 자문을 통해 ‘공공기물 훼손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위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내면서 착한 시위에 대한 강박이 커졌어요. ‘책잡히면 공격당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생각부터 깨야 합니다.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위법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는 이 프로젝트를 촛불이 끝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차벽을 없애는 게 궁극적 목표여서다.
그런데 지난 19일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스티커를 떼기 시작했다. 애초 그의 머릿속에 없던 장면이었다. 경찰이 스티커를 떼느라 고생할 것을 우려한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굉장히 당혹했죠. (꽃벽은) 저항의 메시지인데, 이걸 떼면 안되는데…. 여러 매체가 이런 시민 행위를 두고 착한 시민, 선진 시위문화라고 칭찬했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26일 촛불 때 떼어내기 쉬운 스티커를 들고 나간 이유다. “(2차 땐) 떼는 행위가 거의 사라졌어요.”
그의 작업을 두고 김수상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밧줄과 망치로도 넘을 수 없었던 차벽을/ 꽃그림 스티커가 무너뜨리고 있었다/(…)/ 빼앗긴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꽃으로 되찾아오자”(‘차벽이 꽃벽이다’) 한켠에선 “촛불을 왜 평화집회 프레임에 가두려고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저주에 가까운 비난 글도 있었죠. 정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른 것이죠. 그분들은 경찰에 적대적이지만, 저는 촛불이 경찰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경찰 차벽의 존재나 착한 시위를 주제로 한 논쟁으로 이어졌다면서 “매우 흥미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26일엔 주차금지 딱지를 패러디한 스티커부터 고 김재규 사진까지 흥미로운 스티커들이 많았어요. 직접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그라피티아티스트도 있었죠. 꽃벽으로 시작된 차벽에 대한 저항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봅니다.’(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꼽아 달라고 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스티커를 쥐여주면서 붙여보라고 하는 모습을 여러번 봤어요. 어린아이들이 저항의 메시지를 표현하면서 위법을 저지르는 경험을 하는 것이죠. 이런 경험은 한국 사회를 억누르는 금기를 조금씩 깨는 계기가 될 겁니다. 이 아이들이 이기는 경험까지 하게 되면 더 좋겠지요.”
일러스트 작가 하면 ‘골방의 고독’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까지 수만장의 일러스트를 그렸다는 그는 어떻게 광장의 예술가가 되었을까? “4년 전부터 평생 일러스트 작가로 살아가는 데 회의가 들었어요.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도 했고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죠.”
낙서부터 시작해 페북에 매일 그림을 한 점씩 올리기 시작했다. ‘데일리 드로잉 프로젝트’라고 이름도 지었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면서 전시도 몇차례 했다. 직접 기획자로도 나서 지난 4년간 신인 작가 50여명의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아트디렉터로도 일했다.
“이전엔 ‘그리고 싶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내 생각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구현해 내느냐에 관심이 있죠. 사실 내년에 이런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촛불이 끼어든 거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차벽에 꽃그림 스티커를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가 25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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