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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인간의 희로애락 감정을 보고 듣고 만지게 해드립니다

등록 2016-11-30 16:51수정 2016-11-30 21:11

중견 설치작가 김승영씨의 신작전 ‘리플렉션즈’
아픔, 고통, 슬픔 등의 감정을 기계장치, 조각, 설치 등으로 형상화
휴머니즘 온기 감도는 작품 통해 소통, 관계, 기억 등 되살려
김승영 작가의 신작 <슬픔>(부분). 한국 불교미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의 고개 숙인 각도와 손을 댄 위치, 표정 등을 살짝 바꿔 인간의 비애어린 감정을 담은 상으로 변모시켰다.
김승영 작가의 신작 <슬픔>(부분). 한국 불교미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의 고개 숙인 각도와 손을 댄 위치, 표정 등을 살짝 바꿔 인간의 비애어린 감정을 담은 상으로 변모시켰다.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은 모순덩어리 조각이다. 평생 온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이 깨달음의 궁극인 신격의 상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고금의 장인들은 끊임없이 불상을 빚어왔다. 대중이 인생의 고통과 불안을 어루만지고 고달픈 삶을 기댈 절대존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기실 불상은 희로애락이 투영된 가장 인간적인 조형예술품인 셈이다.

20여년째 설치·미디어아트 작업을 벌여온 김승영(53) 작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모델로 신작 <슬픔>을 만든 의도도 비슷했다. 돌을 던져도 절대 파문이 일지 않는다는 부처의 평정심 아닌 인간의 슬픔을 확 드러낸 불상은 어떨까. 반가부좌를 하고 미소 띤 볼에 살포시 손가락을 댄 1400여년전 반가사유상의 평정심 넘치는 자태를 작가는 틀어버렸다. 입꼬리 내려간 표정은 음울해졌고, 고개를 더 숙였으며, 손가락 댄 부위는 눈가로 올라가 눈물을 찍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 불상 작품은 지난달부터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 마련된 신작전 ‘리플렉션즈’의 들머리에서 볼 수 있다. 워낙 유명한 예술품이기에 얼핏 복제품을 낸 정도로 여기고 지나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잠시라도 세부를 주시하거나 작품들 사이를 거닐면서 보아야 진가를 알게 된다. ‘반영, 반성’을 뜻하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는 우리가 막연히 내뱉는 ‘감정’이란 인간적 요소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손에 잡힐 듯한 이미지 덩어리로 빚어낸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반가사유상 불상을 필두로, 지하층과 1, 2층에 나온 여섯점의 설치작업들은 형상을 틀거나, 쌓거나 움직임을 되풀이한다. 먹물이 담긴 원형 우물 속으로 두 줄의 쇠사슬이 쉴 새 없이 자동 도르래로 계속 오르내리는 <리플렉션>은 흔들리고 상처받기 쉬운 감정들이 끄집어져 올라가는 형상을 떠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설치작품 위쪽 벽에는 아래 우물의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끼익끼익 거리는 도르래 소리와 함께 얼비친다. 쇠사슬 오르내리는 풍경을, 우리의 모든 감각, 감정을 통제하는 뇌를 침을 꽂은 쇠사슬덩어리로 재현해 저울 위에 얹어놓은 1층 구석의 작품 <뇌>가 지켜보고 있기도 하다.

2층 전시장의 벽돌더미 설치작품. 철창 안 공간에 허물어진 채 놓여진 이 벽돌더미 속 벽돌들 표면에는 인간 감정과 관련된 여러 단어들이 쓰여져 있다.
2층 전시장의 벽돌더미 설치작품. 철창 안 공간에 허물어진 채 놓여진 이 벽돌더미 속 벽돌들 표면에는 인간 감정과 관련된 여러 단어들이 쓰여져 있다.
지하층으로 가면 막혀있는 벽돌문이 있다. 그 문 틈새로 폐가 천장목으로 마루판을 꾸민 내부의 냉랭한 공간이 비치고 쓱쓱 비질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 흙으로 가득찬 가방 속의 나침반이 계속 흔들리며 부유하는 모습과 그 옆에 네온사인 조명으로 된 ‘문을’ ‘열고’ ‘나간다’ 등의 글자들도 보게 된다. 이런 동선이 ‘두려움’ ‘이기심’ ‘오만’ ‘공포’ 등의 글귀가 적힌 벽돌조각들이 널린 쇠창살 속 방으로 이어지고 그 풍경이 다시 1, 2층 공간에 걸친 쇠사슬이 오르내리는 설치작업과 만나게 된다.

이 설치작업들이 연쇄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감정을 뭉개며 사는 현대인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성찰하고 표현하라는 격려다. 그것은 결국 관계와 소통의 회복에 대한 바람일 것이다. 작가는 작업노트에 ‘나는 감정의 죄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하고, 잊어야 하고, 용서하는 것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미술 거장 루이스 부르조아의 말을 인용하면서 작업은 나와 타자와의 소통 방식이자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수단이라고 썼다.

2000년대 이후 김 작가는 스피커를 모아 거대 탑을 쌓거나 체온이 엉덩이에 전해지는 낡은 의자 등의 설치작업을 통해 기억, 관계, 소통 등의 개념을 명쾌하게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거듭해 왔다. 이 신작전은 기술력이나 이미지 포장에 치우쳐온 국내 설치, 미디어아트 흐름에서 벗어나 감정과 소통을 담으려 애써온 그의 휴머니즘 미학이 더욱 무르익었음을 보여준다. 16일까지. (02)736-4371.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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