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19년’이란 당의 연호가 적혀 있어 관심을 모은 공주 공산성 출토 옻칠갑옷조각. 백제 멸망기의 것으로, 박물관 전시에는 처음 선보이는 유물이다.
전시장 안쪽에 있는 부여 왕흥사터 출토 백제 치미. 왕궁, 사찰의 용마루 끝에 놓는 날개 모양의 장식용 기와로 최근 복원을 마치고 처음 일반관객들 앞에 선보이고 있다.
1400여년 전 백제 사람들은 곡선을 사랑했다. 사가 김부식이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묘사한 대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절제와 균형의 미학을 신봉했다. 연꽃무늬가 소담하게 겹으로 피어오른 와당과 허리선이 한없이 부드러운 제례용 기대 등에서 우리는 그들의 예술혼을 가슴 저리게 실감한다.
문화의 기세가 절정으로 치솟다가 미숙한 정치에 발목잡혀 외세의 일격을 맞고 스러져버린, 그래서 더욱 안쓰럽고도 그리운 백제 문화예술의 진수들이 지금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 펼쳐져 있다. 공주(웅진), 부여(사비), 익산 등지의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돌을 맞아 지난 29일 개막한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의 현장이다.
이번 전시는 역대 백제 관련 기획전 가운데 최대 규모다. 출품 유물들도 역대 최고 명품들로 추려졌다. 계속 수세에 몰리다 쇠망한 역사 탓에 백제는 유물량이 적어 신라에 비해 전시 횟수도 적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만큼 이 전시는 백제 예술문화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전시장은 백제 도성의 수도관인 도관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시작돼 가장 안쪽에 들여놓은 무령왕릉의 출토 명품들로 마무리되는 얼개를 띠었다. 웅진도읍기(475~538)와 사비도읍기(538~660)의 대표 문화재 1720점을 크게 도성, 사찰, 능묘 영역으로 갈라 차례로 소개한다.
첫 들머리를 도성 영역으로 삼은 것은 명품 중심의 피상적인 백제 인식을 피하려는 의도다. 도성 안팎의 성곽, 관청, 창고, 공방, 정원, 화장실, 부엌 등에서 나온 생소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생활 공간과 행정 체계 등 백제인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떠올려보도록 하려는 뜻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2011년 공주 공산성 안에서 발굴된 ‘정관십구년’(貞觀十九年, 645년)이라는 중국 당나라 연호의 붉은 글자가 남아 있는 옻칠 갑옷 조각들이다. 처음 일반 공개되는 유물로 백제 멸망 당시 최후까지 맞선 백제군의 것인지, 당나라 군대가 입었던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백제는 중국은 물론 자국의 연호도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어 이 연호를 갑옷에 적은 경위가 무엇인지가 역사적 공상을 일으킨다.
사찰 영역에서는 익산 미륵사터의 금제 사리기와 국내 최고의 왕흥사터 사리기, 익산 왕궁리 사찰터 사리기가 처음 한자리에 나왔다. 물고기 알 모양의 어자 문을 바탕으로 맥동치는 물결무늬를 새겨넣은 미륵사터 사리기의 분방한 장식미와 단호한 모양새를 한 왕흥사터 은제 사리기, 두 사리기 영향을 받은 왕궁리 사리기의 소담한 이미지를 비교 감상하게 된다. 최근 복원된 왕흥사터의 치미 유물도 처음 선보이고 있다. 능묘 영역에서는 무령왕릉의 왕, 왕비 관 자리의 디지털 배치 영상을 두고 불꽃이 올라가는 듯한 왕의 머리 장식과 대칭 구도에 우아한 미감을 지닌 왕비의 머리 장식이 양옆에 내걸렸다. 최근 신라 공주의 것이라는 설이 나와 논란을 불붙인 익산 쌍릉 출토 목관 파편과 관에 박혔던 못 장식들도 놀라운 감흥을 일으킨다. 세월에 쓸려 산산조각났지만, 금송 관재 위에 접합부를 가린 왕방울 못과 원형 장식판의 정교한 매무새는 그들의 미의식이 어떤 경지에 올랐는지를 웅변한다. 기획자인 오세연 연구관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제 문화가 왜 세계유산에 오를 만한 가치를 지녔는지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30일까지 열린 뒤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간다. 신라권에서 처음 치르는 백제 특별전이어서 서울 전시 못지않게 시선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