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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손꼽아 기다렸던 거장 쿠델카의 집시 사진들 한국에 왔다

등록 2016-12-18 14:14수정 2016-12-18 21:27

한미사진미술관에서 17일부터 첫 사진집 낸 집시 연작 111점 전시
60년대 유랑집시의 삶 감각적으로 담은 수작들 묵직한 톤으로 선보여
70년대 첫 사진집보다 어두운 톤 바뀐 출품작들 재창작 논란도
쿠델카의 <집시> 연작 일부인 ‘모라비아 1966’.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집시음악 축제 광경을 찍은 작품이다.
쿠델카의 <집시> 연작 일부인 ‘모라비아 1966’.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집시음악 축제 광경을 찍은 작품이다.
<집시> 연작 중 ‘슬로바키아, 1967’.
<집시> 연작 중 ‘슬로바키아, 1967’.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당시 30살 사진가 요세프 쿠델카는 세계 사진계를 열광시킨 한장의 사진을 찍었다. 소련군 탱크가 쳐들어오는 프라하 광장의 급박한 전경 앞에서 손목시계를 불쑥 내민 컷 하나.(그의 손목은 아니고 다른 촬영기자의 것이었다고 한다.) 시대와 시간과 공간이 가장 절묘한 순간에 서로의 몸을 섞은 이 사진은 지금도 20세기의 대표적인 다큐저널 사진 명작으로 널리 회자된다. 프라하 광장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라면 으레 같은 구도로 팔목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다.

이제 칠순을 넘었지만, 여전히 정력적인 촬영, 전시 활동을 거듭하며 세계 사진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려온 쿠델카가 자신의 초기 명작 <집시> 연작을 들고 한국에 처음 전시 나들이를 왔다. 17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국내 사진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개막식을 올린 ‘요세프 쿠델카’전이다. 이 전시에서 그는 1975년 미국 어퍼처 출판사에서 첫 사진집을 냈고, 2011년 두번째 증보판이 나온 <집시> 연작의 수록사진 111점을 새롭게 보정한 원본 프린트로 선보인다.

그간 팔목시계 사진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68년 옛 소련군의 프라하 침공 현장을 찍은 사진 연작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사진가나 애호가들 사이에서 쿠델카의 작품 세계를 짚어보려면 첫손 꼽히는 작품이 바로 <집시> 연작이다. 프라하 연작이 나오기 전인 60년대 조국 체코의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지방 유랑 집시들의 삶을 찍은 것을 시작으로 체코, 루마니아, 헝가리, 프랑스, 스페인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촬영한 집시 작품들을 망라한 연작이다. 한 터전에 뿌리박지 못하고 유랑하는 집시들의 삶과 죽음, 인생 의례 등의 여러 장면을 남녀노소 군상을 통해 보여주는데, 희로애락을 넘어 다기한 상념을 일으키는 인물들의 표정과 환각적인 구도로 다가오는 장례식장의 명암 표현 등에서 작가의 천재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작가 개인의 주관적 관점이 객관적 현실을 포착하는 다큐적 서사의 본령에 넉넉히 배어든 초창기 쿠델카 사진의 진수를 담은 이미지들이다.

16일 열린 한국 전시 간담회에서 집시 연작에 대해 설명하는 쿠델카. 평소와 달리 이날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를 유난히 많이 쏟아낸 그는 집시 연작이 인간의 가치, 보편적 삶에 대한 작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형석 기자
16일 열린 한국 전시 간담회에서 집시 연작에 대해 설명하는 쿠델카. 평소와 달리 이날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를 유난히 많이 쏟아낸 그는 집시 연작이 인간의 가치, 보편적 삶에 대한 작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형석 기자
“내가 왜 집시를 찍었는지는 단적으로 잘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잖아요. 내게 사진이란 현실 기록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입니다. 다만, 내가 집시음악을 매우 좋아했다는 점이 작업으로 나를 이끈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하지요. 전시장 한구석의 슬라이드 상영관에서 제가 좋아하는 집시음악을 들어보세요.”

16일 미술관 안의 간담회장에서 만난 쿠델카는 <집시> 연작에 몰입하게 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내 “집시의 여러 모습들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보편적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각자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해석할 수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했다. 사실 쿠델카 자신이 한동안 얼굴 없고 국적 없는 집시 같은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그는 이 연작에 대한 집착이 각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70년 서유럽 집시들을 촬영하기 위해 체코를 떠난 뒤 곧장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프라하 연작으로 진작 유명세를 탄 그의 이름과 얼굴이 알려졌고, 87년 프랑스에 귀화할 때까지 무국적으로 떠도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흥미로운 쟁점거리도 던진다. 75년 프랑스 사진기획자 델피르의 조력으로 미국에서 처음 출판돼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고, 한국에서도 80년대 열화당의 포토포슈 문고 번역본으로 알려진 <집시> 연작 사진집 초판의 이미지를 이번 전시에서는 거의 엿볼 수 없다. 작가가 시커먼 암색 톤으로 재인화 작업을 거친 2011년 증보판 사진집의 이미지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가 망명 전인 60년대 초창기 집시 작업을 출간하려고 가제본했던 작품집을 50년 만에 되살려낸 것이라고 한다. 출품작들을 본 강운구 사진가는 “거의 다른 작품처럼 느껴질 만큼 화면이 어둡다. 델피르가 관여한 초창기본보다 좋은 이미지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고 평했다. 작가가 연륜이나 세월에 대한 감각을 앞세워 40여년 전 촬영이 끝난 명작들을 재창작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상 재창작인데도 계속 원작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보는 이들마다 관점은 다를 수 있다. 내년 4월15일까지. 성인 6000원. (02)418-1315.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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